전쟁, 자연재해부터 학대, 따돌림, 그리고 대인관계 스트레스까지. 트라우마는 우리의 마음에 지각변동을 일으켜요. 회복탄력성이 뛰어나거나 주변의 지지체계가 탄탄한 경우에는 잘 회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트라우마가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일상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러한 질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또는 PTSD라고 불러요. PTSD는 트라우마 사건의 반복적인 재경험, 그리고 트라우마와 관련된 상황이나 자극을 회피하려는 행동을 특징으로 해요. 하지만 문제는 PTSD의 영향력은 단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동이 일어 사방팔방 퍼지는 것처럼, 트라우마가 마음속 한가운데 뿌리를 내리면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가 가지처럼 뻗어나가게 돼요. 실제 임상 현장에서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괴로움 때문에 찾아오는 트라우마 환자도 있지만, 무기력하고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다거나, 온종일 불안하고 밤에 자꾸 깬다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 수 없다는 등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랍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PTSD와 이에 동반되는 다른 정신질환 간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어요.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PTSD는 우울증, 불안 장애, 불면증, 식이 장애, 약물 남용 등 다양한 정신질환과 자주 함께 나타난다고 해요. 트라우마가 장기화되면 없던 증상이 새로 생기기도 하고, 원래 문제가 일부 존재했던 경우에는 이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하죠. PTSD가 있을 땐 왜다른 정신질환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은 걸까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이 제시되고 있는데요, 하나씩 살펴볼게요.
첫 번째는 감정조절의 어려움에 관한 내용이에요. PTSD 환자는 악몽, 플래시백 등을 통해 트라우마 사건과 관련된 강렬한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돼요. 이러한 재경험은 특히 고통,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히 다루고 처리하는 능력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트라우마와 직접 연관이 없는 감정도 조절하기 어려워져요. 감정조절 문제는 기분이나 정서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의 결핍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감정조절 문제로 인해 인지 기능이 저하되면 우울, 불안같은 문제에 대해 취약해진답니다.
또다른 가설은 PTSD의 핵심 증상 중 하나인 회피와 연관되어 있어요. 회피란 트라우마 사건과 동일하거나 비슷한 상황이 재발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관련된 자극을 피하는 행동을 말해요. 문제는 이 회피가 사회적 관계나 트라우마와 전혀 관계없는 것들까지 외면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흔히 트라우마가 지배하는 현실을 모면하기 위해 과도한 음주를 하거나 수면제 등의 약물을 남용하기도 해요. 이러한 해로운 행동은 또다시 새로운 트라우마를 유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등 정신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어요. 가장 큰 문제로는 회피 행동이 치료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에요. 이는 트라우마에 대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동반된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조기 개입을 어렵게 만들어요.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PTSD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트라우마 사건과 관련해 파국적 사고와 반추에 빠진다는 점이에요. 파국적 사고는 최악의 일을 생각하며 걱정하는 것을 뜻해요. PTSD에서는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파국적 사고가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자기 비난과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해요. 또한 PTSD에서는 반추 사고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특히 자신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난답니다. 이러한 파국적 사고와 반추는 다른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더 취약하도록 만들기 마련이에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 등의 정신질환과 트라우마가 공존하는 경우에는 상담 등의 심리치료를 통해 트라우마를 충분히 다뤄주는 것이 중요해요. 이때 증상에 대한 적절한 조절도 물론 중요하지만 마음속 깊숙이 박혀있는 트라우마를 재경험(또는 재처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답니다. 기억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트라우마를 둘러싼 감정조절과 사고방식은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세요. '나'는 어떤 기억보다, 어떤 경험보다 훨씬 더 큰 존재예요. 지난 삶의 맥락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그로부터 경험들을 재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디스턴싱의 중요한 목표랍니다.
Bryant RA.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s moderator of other mental health conditions. World Psychiatry. 2022;21(2):310-311. doi:10.1002/wps.20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