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기껏 노력하고 명문대에 입학했는데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 출세하고 성공했는데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 가질 거 다 가지고 모자란 바 없어보이는데 우울한 사람들.
대체 다 이뤘는데 우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전통적인 관점에서 우울증은 질환이다. 질환이란 없어져야 할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질환에서 그 없어져야 할 무언가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다루는 학문을 ‘병리학’이라고 한다. 당뇨에서는 혈액 속 당이 많은 것이 문제요, 암에서는 암세포가 생긴 것이 문제다. 각각의 질환은 그 원인으로 인해 증상이 생긴다. 의학은 증상을 완화하고 원인을 제거하는 학문이다.
정신의학도 우울증을 동일한 시선으로 보았다. 우울증에서는 특정한 부정적 현상들이 나타난다. 무기력, 죄책감, 기분 저하, 수면 문제 등이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생화학적으로 보면 그러한 증상의 원인은 호르몬, 특히 세로토닌계 호르몬의 불균형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러한 증상의 원인은 나, 자신, 타인에 대한 왜곡된 사고다. 그러한 왜곡된 사고는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 이를 체계적으로 검증하고 약화시키는 심리치료가 필요하다. 인지치료는 전형적으로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우울증의 증상과 원인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물론 제법 효과적인 방법이다. 항우울제만큼 효과를 낸다는 보고도 있고, 디지털 인지치료가 대면치료만큼 효과가 낸다는 보고도 많다.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로는 큰 성공을 이루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리는 사람들을 쉽게 이해할 순 없다.
최근에 심리학계는 우울증을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사람도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영위하고 싶은 삶의 형태에 대한 기준을 심리학적인 용어로 ‘가치(Value)’라고 부른다. 가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절대적이다. 모두가 가요가 좋다고 해도 그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라틴음악을 원하고 있다면, 라틴음악은 나의 가치다. 그 누가 뭐라고 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는 나의 선택이다. 자유로운 나의 의지와 선호로 선택한 나만의 방향성.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가치를 상실한 경우에도 깊은 심리적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보고하는 사람들 중에는 흔히 “삶이 무의미하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자세히 면담해 보면 삶에 대한 방향성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원하는 것도, 순수한 열정도, 일말의 희망도 남지 않은 채 회색빛 삶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흔히 다른 사람의 가치를 좇아 맹목적으로 노력한 후 찾아온다. 특히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말을 따라 공부에만 매달리거나, 원치 않는 전공 또는 직장을 택해 그곳에서 노력하여 좋은 성취를 이뤘을 때면, 이후에 찾아오는 허무함은 더 크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던 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인지치료는 이러한 가치를 명료하게 하고 그에 전념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차용한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그들이 다시 삶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것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늘려가며, 긍정적인 행동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이러한 문제가 많다. 남 눈치보고,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걸으면 이상하게 바라보고, 일단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야 하는 사회 분위기. 가치로운 삶이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삶을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삶이 무의미하여 안개속을 헤매고 있다면 잠시 멈춰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만일 당신이 우울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렸다면 잘 설계된 인지치료를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치로 나아가자. 당신의 마음은 정말로 당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