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을 막는 생각 습관: 개념화

'개념화'의 생각 습관이 우울증 극복을 막는다

우울증은 흔히 자주 재발하며 만성적인 경과를 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실 최근 들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보고도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아티클에서 알아보자). 우울증은 왜 그렇게 이겨내기 힘든 걸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인지심리학적 측면에서 ‘개념화’라는 생각 습관은 변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개념화’에 대해 알아보자.

개념화란 무엇일까?

인간은 인지적으로 항상 지름길을 찾는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연속적인 특성을 띠지만, 우리는 늘 범주를 나누어 구분한다. 백인과 흑인, 여성성과 남성성, 좌파와 우파 등. 뇌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범주화를 하여 사물을 바라보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한 범주화 작업을 한다. 이를 개념화 또는 자기 개념화(self-conceptualization)라고 한다. 개념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특정한 개념을 만들어 그 틀 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 대해 특정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 나는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야.
  • 나는 이혼한 남성이야.
  • 나는 우울증 환자야.

얼핏 보면 그저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이 표현이 뭐가 문제라는 걸까?

스스로 지정한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사람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범주화 작업을 한다. 이를 자기 개념화라고 한다.

개념화는 왜 문제가 될까?

아래 문장을 살펴보자. 빈칸에 들어갈 말을 마음속으로 떠올려보자.

  • 나는 __________ 한 사람이다.

위 문장은 항상, 언제든, 동일하게 사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X다’라고 말할 때, 그 문장은 결코 전체를 반영하지 못한다.

개념화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업에 실패했을 수도 있고, 이혼했을 수도 있고, 우울증으로 진단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개념을 지나치게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여 융합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에 강하게 융합되면 삶의 반경이 좁아진다. 심리적으로는 더욱 경직된다. 변화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흔히 이런 식이다.

  • 나는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야*(그러니 내가 왜 어려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지 알겠죠?)*
  • 나는 이혼한 남성이야*(그러니 내가 안정적인 관계를 찾지 않고 일회성 관계만 찾아나서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니?)*
  • 나는 우울증 환자야*(우울증 환자의 삶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는 잘 아시죠?)*

이처럼 개념화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대해 매우 그럴싸한 이유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이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위를 제공한다.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개념화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한 개념화는 우울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변화의 원동력을 차단한다.

개념화는 ‘자기 충족적 예언’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즉, ‘나는 우울증 환자야’라는 생각에 강하게 융합되어 있다 보니 활동 반경을 줄이고 침대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며, 결국 삶 속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더 차단되며, 정말로 자신이 ‘우울한 사람’ 그 자체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마치 예언한 것처럼.

생각을 통해 예언을 하는 사람의 모습
'나는 우울증 환자야'라는 생각에 강하게 융합되어 활동 반경을 줄이고나면, 정말로 '우울한 사람'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치 예언한 것처럼 말이다.

개념화 안 하는 법

개념화는 사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이 겪어온 삶의 경로를 따라가보면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게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개념화라는 생각 또한 하나의 심리적 사건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니라면 어떨까? 우리가 그 생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 하지 않고, 우리 마음은 원래 그렇게 자의적으로 제멋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인지한 채, 마음속에 떠오르는 개념화를 그저 하나의 심리적 사건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개념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자신의 생각 체계를 파악하여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깊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이 과정에서는 인지치료사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한 과정이 선행되었다면, 개념화가 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방법은 어떤 것이든 좋으나 ‘생각기록지’를 쓰는 것이 제법 도움이 된다. 생각기록지를 적을 때에는 상황, 생각, 감정, 행동을 분리하여 기록하고, 자신의 생각이 개념화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개념화는 자신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될지 파악한다. 이렇게 생각 자체에 ‘개념화’라는 꼬리표를 스스로 붙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개념화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이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환자가 변화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을 꼽으라고 하면 ‘개방성(openness)’을 이야기하곤 한다. 즉, 어떠한 가능성과 생각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개방성이 있으면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기 쉽고, 연구에 따르면 희망은 치료자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치료 효과에 기여한다.

개념화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이러한 개방성을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이 지정했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

참고문헌

Zettle, R. D. (2007). ACT for depression: A clinician's guide to using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in treating depression. New Harbinger Publications.

Hayes, S. C. (2005). Get out of your mind and into your life. New Harbinger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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