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요소는 낙인(stigma)이에요.
예전보다는 정신질환 또는 증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낙인으로 인해 힘든 일이 생겨도 정신과 내원을 꺼리거나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죠. 삶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조차, 나를 걱정하지는 않을까, 내 마음을 몰라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입을 열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가족은 한 사람의 정신건강에 대해 어마어마한 영향력과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장기 시절 반복적으로 가정폭력과 방치에 노출된 사람의 경우, 추후 정신과적 증상을 경험하게 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에요. 흥미롭게도 가족 내의 특징적인 의사소통 방법 역시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판적 발언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적대감, 과도한 관여를 보이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우울증, 양극성 장애 및 조현병의 발생률과 관련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반대로 상호 존중에 기반한 지지적인 가정 분위기는 정신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겠죠.
이번 글에서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의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및 훈련이에요.
정신과적 치료라고 하면 약물이나 심리치료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가족 교육은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만큼 정신질환의 재발이나 악화를 예방하는 데에 매우 큰 역할을 한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가족 교육이 시행되는 비율이 굉장히 낮으며, 대부분의 임상가들도 가족 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2017년 미국의 우울 및 양극성 장애 지원 연맹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응답자의 87%가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단지 10%만이 가족치료를 받았다고 해요.
그렇다면 가족 교육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요?
가족 교육은 아래의 4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됩니다.
환자의 증상과 진단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하여 가족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요.
환자와 가족이 정신질환의 초기 경고 신호를 인식하고 효과적인 대처 전략을 짜도록 해요. 기분 차트를 작성하여 스트레스 요인과 대처 방법을 기록하여 공유할 수 있어요.
가족 간의 과도한 감정 표출을 줄이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촉진하는 기술을 가르쳐요.
다양한 치료 방법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환자와 가족이 함께 적절한 치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요.
위와 같은 부분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가족이 환자의 치료 및 회복 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장기적으로는 재발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어요.
임상 현장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호자가 환자의 진단명조차 잘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환자가 직접 가족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비전문가인 가족은 환자의 어떤 어려움이 문제가 되는지, 환자가 힘들어할 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더욱 알기 어렵죠. 더 나아가, 정신건강 전문가가 보호자에게 환자의 증상, 질환, 경고 신호, 대처 전략 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환자와 가족 사이의 단절을 키울 거예요. 결국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사자, 가족, 그리고 치료진 모두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이죠.
이처럼 정신건강은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때로 회복의 열쇠는 가족에게 있답니다.
Miklowitz DJ. Family psychoeducation in the early stages of mood and psychotic disorders. World Psychiatry. 2023;22(3):389-390. doi:10.1002/wps.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