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주 / CEO of Distancing
사실 우울증은 질환이 아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같은 것이라는 천진난만한 소리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이상한 해괴망측한 유사과학을 표방하고자 함도 아니다. 나는 자연과학과 의학을 전공했고, 과학적 세계관이 투철한 뼛속까지 이과적인 사람이다. 정신의학에 한심한 대안 설명을 덧붙이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한 한심한 유튜버의 말처럼 우울증은 애초에 병이 아니고 다 마음이 약해서 벌어지는 허상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주장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우울증을 질환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낳는 수많은 부작용들을 고려해 보면 차라리 우울증은 질환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게 더 유용할 듯싶다.
우울증이 일반적인 질환이 아닌 이유는, 사실 우울증은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아주 적극적인 노력이다. 처절한 노력이다. 사람들은 내적인 심리적인 어려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를 한다. 그러한 대처 중 내적인 행동 으로는 '반추'가 대표적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각을 곱씹는 경향이 있다.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왜 이런 걸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 반추는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유발하고, 반추를 하는 사람들은 내면의 굴을 파고 한없이 밑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추는 질환의 증상인 걸까?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우울한 사람들이 반추를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반추는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도이기도 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대비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반추를 통해 깊은 통찰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그 과정의 끝에 어떤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가만히 앉아 생각을 검토해 보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행동이다. 우울한 사람들이 무능하거나, 모자라거나, 바보라서, 동기가 없어서, 반추를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심리적인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식 중, 외적인 행동으로는 대표적으로 '철회(withdrawal)'가 있다. 우울한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다. 왜 그런 걸까? 그들이 한심해서? 에너지가 없어서? 머리에 문제가 생겨서?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적 측면에서 우울한 사람들의 내면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 마음속에는 제법 확고하게 자리잡은 어떤 생각들이 있다. 가령 "나는 답도 없어", "나는 실패자야", "나는 무능해", "나는 사랑 받을 가치가 없어" 이런 생각들이다. 이런 생각들은 주로 삶을 살아오며 제법 큰 영향을 주었던, 또는 충격적이진 않았지만 꾸준히 지속되어 가랑비에 옷깃 젖듯 영향을 준 경험들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만약 정말로 내가 의식하진 못하더라도 나의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들이 자리잡고 있다면 어떨까? 가령 최근에 실직 당했고, 취업은 매번 실패하고, 이제는 아르바이트조차 잘린 상황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는 "나는 실패자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정말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안전한 걸까? 다시 열심히 이력서를 쓴다? 가당찮은 소리. 왜 굳이 에너지를 더 쓰고, 또 실패해서 멘탈이 흔들릴 일을 하겠는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약속을 잡고 친구들을 만나는 게 좋을까? 얼토당토 않는 소리. 밖으로 나가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또 나의 무능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최선은 무기력하게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울증은 그렇게도 만성적이고 빠져나오기 힘든 질환이 되었다. 아주 강력한 악순환이 돌기 때문이다. 우울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반추를 하고 반추는 우울을 자극한다. 비슷하게 우울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기력하게 행동하고 무기력은 다시 우울을 자극한다. 이처럼 우울증의 주된 매커니즘은 우울증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울증은 통상적인 질환과 같다고 볼 수 없다. 암은 내가 건강을 더 좋게 하려는 노력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암은 나의 DNA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서 생긴 문제지, 나의 무의식적인(혹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울증은 질환이 아니다. 그저 처절한 노력이었을 뿐이다.
'질환으로서 우울증'에는 제법 부정적인 영향도 내포되어있다. 우울증을 질환으로 규정하기 시작한 뒤로부터 끝없는 비타당화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비타당화 환경이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감정과 나의 생각이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환경'을 뜻한다.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나의 잘못이다. 우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나의 동기 부족이다. 나의 이러한 모습은 '병리적 증상'으로 항우울제나 기타 다른 치료를 통해 뿌리채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용납할 수 없다.
아니다. 그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위와 같은 생각들은 종종 오히려 우울을 자극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한 과도한 노력(예: 긍정적인 생각하기, 안 우울한 척 하기)을 유발하고, 이는 다시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불러일으켜 우울증을 심화시킨다. 이 결코 타당하지 않은 나의 모습,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질환은 끊임없이 악순환을 돌며 우울을 심화시킨다. 나는 자신의 경험과 현재 모습을 수용받지 못해 괴로워만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우울한 사람들이 우울하게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치료자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을 질환으로 규정하는 것이 이토록 우리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수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차라리 우울증은 질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우울증은 질환이기보다는 오히려 최선의 노력일 뿐이다. 우울증이 최선의 노력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파악한 뒤, 최고의 노력을 찾아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패턴을 만드는 것뿐이다.
잘못된 건 없다. 최선을 최고로 바꾸는 것. 그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 사실 나는 그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의도는 그만큼 정신건강 문제가 흔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마음의 감기라는 표현은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겪는 처절한 고군분투를 허무맹랑한 일로 치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사실 이는 모든 정신질환에 거의 공통되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공황장애, PTSD에서도 그들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러한 특성이 가장 또렷하게 나타나는 건 경계성 성격장애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경계성 성격장애의 치료에서는 이 타당화 문제가 치료의 주된 초점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