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염증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그 의미가 모호하거나 잘못된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염증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염증은 외부의 자극이나 손상에 반응해 몸을 지키기 위해 면역 체계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건강을 지키고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생리적 반응이에요. 그런데 이 염증 반응이 자극 없이 불필요하게 활성화되거나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다양한 신체기관에 손상을 유발하고 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염증이 정신건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염증이 우울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왔습니다. 주요 우울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시행한 결과, 인터루킨-1, 인터루킨-6 등의 염증성 사이토카인 및 C반응 단백질 등 염증과 관련된 물질이 정상 인구보다 증가한 경향이 관찰되었어요. 염증은 전신에 걸쳐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염증 신호 전달 체계가 활성화되면 뇌 조직으로 면역세포가 이동하고 결국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매개하는 다양한 신경 회로에 이상을 유발할 수 있답니다. 반대로, 일부 우울증 환자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차단이 우울 증상을 완화시켰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우울증 환자에서 염증 반응이 관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염증이 우울증의 발생 및 증상 발현과 연관된 것은 맞지만, 우울증 환자 중 실제로 염증이 관찰되는 비율은 전체의 25~50%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형의 환자군에서는 무엇이 염증을 유발할까요? 유년기 트라우마부터 일상적인 어려움을 아우르는 스트레스, 그리고 비만을 비롯한 대사 증후군 등의 다양한 신체적인 요소가 염증의 유발 인자가 될 수 있다고 해요.
염증이 관여하는 정신질환이 비단 우울증뿐일까요? 현재까지 축적된 의학연구에 따르면, 염증은 우울증에 국한되지 않고 조울증, 불안 장애, PTSD, 조현병 등 거의 모든 정신건강 문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뇌 조직에 염증이 발생하면 다양한 신경전달물질과 신경 회로의 이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결국 어떤 회로에 문제가 생기는가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발현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보상 회로에 과도한 염증이 발생하게 되면 쾌락 상실 및 동기 저하 등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어요. 실제로 급성기 염증 반응을 나타내는 C반응 단백질의 혈중 농도는 동기 저하, 집중력 저하 등 우울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증상 중 하나인 정신운동 지연과 비례한다는 연구도 보고되었습니다.
우리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마음의 ‘염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영국의 정신과 의사인 에드워드 불모어는 이러한 비유에 착안하여 <염증에 걸린 마음>이라는 제목의 저서에 염증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염증을 타겟으로 하는 정신질환 치료법은 없답니다. 염증을 원인으로 보고, 또 그것을 치료로 발전시키까지는 여전히 많은 관문이 남아있어 보여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랍니다. 다양한 이완요법들을 포함한 인지치료, 마음챙김 명상 같은 것들은 스스로에게 처방할 수 있는 일종의 ‘항염증제’와 같다고도 볼 수 있을 거예요. 항염증제가 없을 때에는, 염증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익혀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회복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디스턴싱도 그러한 연습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Miller AH. Beyond depression: the expanding role of inflammation in psychiatric disorders. World Psychiatry. 2020;19(1):108-109. doi:10.1002/wps.2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