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생체시계, 활동일 주기 등으로 불리는 일주기 생체리듬(Circadian rhythm)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는 최근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의학 전반에 걸쳐 주목받고 있는 분야랍니다. 2017년에는 생체리듬의 원리를 밝힌 미국의 과학자 3인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우리 몸은 빛의 노출에 따라 약 24시간의 주기에 걸쳐 호르몬 분비가 달라지면서 수면, 식사, 혈압과 체온 조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활동이 영향을 받게 돼요.
그런데 이 생체리듬이 수면뿐만 아니라 기분장애, 불안장애 등의 다양한 정신과적 질환과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영국 바이오뱅크에서 8만 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를 보면, 야간에 형광등 등의 인공적인 빛에 노출되는 경우 우울증뿐만 아니라 양극성 장애,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어요. 반대로, 낮 시간에 빛 노출이 증가할수록 정신질환 발생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북유럽처럼 일조량이 부족한 지역에서 우울증의 발생 비율이 높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죠.
생체리듬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제각각 편안하게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에 차이가 나고, 따라서 하루 중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활발한 시간이 다른데요. 이러한 선호도를 일주기 유형(chronotype)이라고 불러요. 일주기 유형은 아침형, 중간형, 저녁형의 3가지로 나뉜답니다. 이 일주기 유형은 양극성 장애와 관련이 높아요. 관련 연구에 따르면, 저녁형 선호도는 양극성 장애의 발병 위험을 40% 정도 증가시킨다고 하네요.
생체리듬과 관련하여 수면 패턴 역시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요.
청소년기, 출산 후, 그리고 폐경기에는 수면-각성 주기의 24시간 패턴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요. 특히 이 시기에 우울증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인 것 같기도 하죠? 평소 불면 증상 없이 잘 자던 사람도 과도한 업무나 시차 등으로 하루 이틀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짜증이 올라오거나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도 현대인들이 흔히 겪는 일이니까요. 또한 기존에 기분 및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불규칙한 수면 및 생활 패턴 등의 생체리듬 장애가 동반된다면 정신과적 증상이 더욱 악화할 수도 있다고 해요.
이처럼 생체리듬의 중요성은 단순히 흥미로운 사실을 넘어 정신질환의 예방과 치료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어요.
멜라토닌이나 오렉신 길항제처럼 생체리듬을 타겟하는 약제가 이미 기분장애의 치료에 널리 활용되고 있고, 자동으로 활동 및 수면 패턴을 기록하는 다양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가까운 미래에 대중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답니다.
불면증, 수면주기 이상 등의 생체리듬 문제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대 사회인 만큼 생체리듬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더더욱 안 되겠죠. 생체 리듬을 이해하고 자신의 일주기 유형에 맞게 일정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은 정신적 문제를 예방하는 데 아주 중요하답니다. 만약 지금 마음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나의 생체리듬 또한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요?
Hickie IB, Crouse JJ. Sleep and circadian rhythm disturbances: plausible pathways to major mental disorders?. World Psychiatry. 2024;23(1):150-151. doi:10.1002/wps.2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