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원리, 생각
No.
9

생각은 '나'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생각은 부정확합니다. 편향적이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생각은 정말 믿을 것이 못 되는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 모든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나‘를 중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쉽게 자신과 결부시킵니다. 모든 일은 나를 중심으로 해석됩니다. 세상에서 나의 의미는 매우 커 보입니다. 나의 역할은 실로 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과도한 책임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이미 발생한 결과를 두고 자신의 기여를 평가하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 또는 결과에 있어 자신의 기여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것을 ‘책임 과다’ 생각 함정이라고 합니다.

근거 부족, 부정 편향과 마찬가지로 책임 과다 또한 우리들의 생존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문명이 자리 잡기 전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습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지요.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은 마주하는 모든 일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합니다. “저 행동이 무엇을 뜻하지?”, ”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지?“, ”나는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걸 뜻하는 걸까?“ 이런 방식으로 어떤 사건의 의미를 자신과 강하게 결부시켜 판단하는 능력은 우리가 지난한 투쟁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반면 ”몰라. 그냥 별 의미 없겠지. 쟤는 쟤고, 나는 나고“라고 생각했던 유인원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화적인 압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일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의미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마음속에서 ‘나’는 항상 ‘너’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의미 부여는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문제는 그 의미 부여가 ‘책임감’과 결부되었을 때 아주 강한 레몬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 자신의 기여를 실제보다 더 과도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 우리 팀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 마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심지어 우리는 전혀 통제 가능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책임을 부여하곤 합니다. 생명을 앗아가는 온갖 자연재해는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건 개개인의 책임이 아닙니다. 비슷하게 자녀가 장애를 갖게 된 것은 부모의 책임이 아닙니다(음주, 약물 복용 등의 문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유전자가 감수분열을 하기 위해서 DNA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DNA가 더 안정적으로 분리되도록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영역에 대해서도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공감하고 연민할 줄 아는 생명체입니다. 그러한 일을 겪어보지 않고서 냉소주의에 기반해 인간사 다양한 굴곡을 몇 가지 사실들로만 환원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다만, 책임감과 죄책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책임 과다 생각함정에 빠지면 역시나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깊은 책임감과 죄책감, 그리고 이어지는 자기 의심과 자책은 우리를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이와 같이 좀처럼 거리를 두기 힘든 생각을 발견하다면, 그리고 그 생각의 내용이 벌어진 어떤 일에 대해 스스로에게 과도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해 보는 것이 도움됩니다. 우선 발생한 결과에 대해 내가 어떤 원인을 기여했는지 적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나의 요인을 제외하고, 그 결과 발생한 데에 영향을 줬던 또 다른 요인들을 다섯 가지 적어 보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각각의 요인들이 그 결과가 발생하는 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 기여도를 적어 보시길 바랍니다. 100점 만점 중에서 각각의 요인이 몇 점씩 기여했는지 적어 보면 됩니다. 이때 나의 기여도는 가장 마지막에 그 나머지 값을 할당하는 게 좋습니다. 다음으로는 각각의 요인들이 통제 가능했는지, 통제 불가능했는지 선택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는 데에 있어서 통제 불가능한 요인은 어느 정도였는지, 통제 가능한 요인은 어느 정도였는지, 그중에서 나의 기여는 얼마나 되는지를 분석해 보시길 바랍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 발생한 결과: 이번에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지 않음.
- 기여 요인 / 통제 가능 여부 / 점수
- 요인 1: 이번에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긴 했다 / 통제 불가 / 20
- 요인 2: 협업하는 다른 부서 또한 답을 잘 찾아내지 못했다 / 통제 불가 / 20
- 요인 3: 경쟁사가 유달리 남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긴 했다 / 통제 불가 / 10
- 요인 4: 애초에 목표 자체가 너무 높게 설정된 프로젝트이긴 했다 / 통제 가능 / 20
- 요인 5: 팀원들이 헌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 통제 가능? / 10
- 나의 요인: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20)

- 결론
- 이번 결과에서 50% 정도는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이 기여했다.
- 나머지 50%는 통제가 가능했는데, 그 중 나의 역량이 부족한 부분은 40% 정도 기여를 했다.

위 연습을 할 때 두 가지 강조할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책임 과다’ 생각함정을 회피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잘 분석해 보는 것과,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 “몰라. 내 책임 아니야.”라고 이야기하는 건 다릅니다. 전자는 생각과 거리를 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인이지만, 후자는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한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로, 반복적으로 강조를 하건데, 이 연습은 ’틀린 생각을 올바른 방향으로 교정‘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실제 나의 기여는 100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산해 보니 80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100으로 예상했는데 30인 날도 있겠죠. 한편 100이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100인 순간도 간혹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닙니다. 생각이 얼마나 임의적으로 모든 문제를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이 그토록 임의적이라면 그것에 그렇게 강하게 영향을 받을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날이 추우면 추위를 느끼고, 햇빛을 쬐면 따뜻함을 느끼는 것처럼, 생각 또한 마음속에서 떠오르고 지나가는 심리적 사건으로 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생각이 본질적으로 정확하지도 않고, 편향적이며, ‘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 모든 것을 그대로 믿고 그것과 싸우며 일평생을 보내지 않고, 생각과의 관계를 다시 맺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생각은 하나의 심리적 사건에 불과합니다. 이 명제를 이해하고 연습할 때 도무지 괴로운 생각이 떠오른다면 근거 부족, 부정 편향, 책임 과다 생각함정을 떠올려보는 게 도움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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