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원리, 가치
No.
23

가치는 선택이다

가치는 내가 선택한 삶의 방향입니다. 가볍게 생각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좋아. 내가 원하는 걸 분명히 하고 그것에 따른 선택들을 해나가라는 거지? 별거 없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이해하고 연습한 디스턴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치에 대한 논의는 늘 혼란스러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그 방향에서 가치는 회피가 되고, 과잉보상이 되고, 평가가 되고, 개념화가 되고, 반추가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핵심믿음, 중간믿음은 강해져만 갑니다. 좋은 뜻으로 고민해본 것이지만, 결국 가치는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또 다른 함정이 되고 맙니다.

가장 깊은 함정은 “남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가치”를 자신의 가치라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가치를 내세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더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어요.”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야 우리 아빠가 나를 인정해줄 거라서요.” 다른 누군가는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게 자신의 진정한 가치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밤낮으로 일에 매진하며 치열하게 살죠. 하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그러한 가치는 “나는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다”라는 자신의 연약한 생각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비슷한 가치들은 많습니다. “나는 날씬하고 싶어.” 왜? “그래야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거니까.”

가치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기준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에게 맞추기 위해 주어진 가치를 좇는 일은 연약한 모래탑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언젠가는 허망하게 무너져버릴 초라한 자존감인 것이지요. 스스로에게 정직하시길 바랍니다. 가치를 고려할 때는 솔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내 생각을 남에게 들려줄 필요도 없습니다. 옳고 그른 답도 없습니다. 세상에 초라한 가치는 없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중요시한다는 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나의 마음속에 그런 팝콘들이 튀어오르고, 나는 그런 팝콘들을 볼 때 가슴이 뛰고 당당하고 만족스러운 것을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모범적으로 보이고자, 또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가치가 있다면 다시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지 말고,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반응하는 가치를 찾고 그곳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삶은 타인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오해는 가장 좋아보이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분에 있어서 장단을 따집니다. 평가적이고 문제해결적인 본능을 내세우죠.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할 때조차 그렇게 합니다. 언젠가 자신이 교제하고 있는 친구와 이별을 할지 고민하는 친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생각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런 것인지, 그는 만나고 있는 친구를 평가할 수 있는 요소를 몇 가지 나열한 뒤, 각 요소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한 후, 점수를 매겨 자신의 판단을 검토했습니다. 바보 같은 짓이지요. 이성에 근거한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임에도 우리는 종종 그런 접근을 취하곤 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본능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주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세계관에 매료되어 있는 저는 이성적인 판단을 아주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 이성과 근거를 들이밀 수는 없습니다. 어느 평가 기준을 가지고 가치를 선택한다고 한들, 그 기준은 또 어떤 근거로 선정된 것일까요? 또 그 근거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일까요? 끝없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고민하거나 마주하기 힘들기 때문에 만든 회피인 것이지요. 현실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인식에서 찾아오는 강력한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기꺼이 경험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머릿속에서 변명거리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개념화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됩니다. 선택하면 그뿐입니다. 가치는 추론을 통해 얻는 게 아니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선택은 생각과 거리를 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가끔씩 “저는 정말로 원하는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많은 경우,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마주하기 힘들어서, 혹은 그러지 못했던 지난 세월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스스로에 대한 깨달음을 차단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적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미로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더 깊은 수렁에 빠져 삶의 의미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다다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디스턴싱을 연습하고 가치를 명료하게 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방향을 찾아내야 합니다. 실제 “나는 원하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이 디스턴싱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후회와 미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 그림을 그릴 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저는 가족이 다 같이 갯벌로 가서 조개를 캐고 야영을 하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제게는 그런 순간들이 너무 소중했던 것 같아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컨설팅 회사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작은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고 커피를 판매하는 스스로를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나와요. 행복하지만 씁쓸한 헛웃음이요.”

선택이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불안함, 두려움, 자기의심, 결정에 대한 책임감. 그럴 때마다 지금까지 이해하고 연습해왔던 디스턴싱을 잘 적용해보시길 바랍니다. 선택은 그 모든 심리적 사건들을 인지하고, 그 모든 이유들과 함께,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온전히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 여기 두 문장이 있습니다.

“나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하겠어.”  
“나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하겠어.”

생각은 하나의 심리적 사건이다. 생각은 자동적이다. 회피할수록 강해진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기꺼이 경험한다면 괴롭지 않다. 첫 번째 문장에 비해 두 번째 문장이 그간의 명제들을 얼마나 더 잘 표현해주는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가치는 주어지는 것도, 추론하는 것도 아닌, 선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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