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원리, 수용
No.
20

믿음 또한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가장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각하는 나’는 착각이다. 생각은 자동적이다. 생각은 마치 팝콘처럼 자동적으로 튀어오른다고 했었죠. 이와 같이 환경적 자극에 의해 마음속에 떠오르는 자동적인 생각들을 인지심리학에서는 ‘자동적 사고’라고 부릅니다. 팝콘 기계에서 정신없이 튀어오르는 팝콘들이 자동적 사고입니다. 사실 이 팝콘도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 중에서도 보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표면적인 생각들이 있는 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근원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생각들도 있지요. 후자와 같은 생각들을 ‘믿음’ 또는 ‘신념’이라고 부릅니다. 이 믿음은 마치 자아와 같습니다. 삶을 살아오며 겪은 다양한 경험들로 인해 자리잡은 믿음들이 하나둘씩 모여 자아를 구성합니다. 따라서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믿음 수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러한 생각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 역시 하나의 생각일 뿐이고, 그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일도 가능합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 믿음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민수라는 남자 아이가 있습니다. 민수에게는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아주 똑똑하고 유능한 형이지요. 형은 어릴 적부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죠. 민수는 항상 형과 비교되곤 했습니다.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형처럼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닌지라 그러한 비교가 많이 부담되기도 했습니다. 친척들이 건네는 “너도 형처럼 좋은 대학교 가야지”라는 격려는 불편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자 한 선생님께서 “아, 너가 동생이구나. 기대 많이 하고 있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민수에겐 큰 부담이었지요.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이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닐 수 있겠지만 부모님은 끊임없이 민수의 노력을 깎아내렸습니다. “너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형처럼 될 수 있을 텐데...”, “형만 따라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형은 이렇게 시키니까 잘하던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민수의 마음속에는 “나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됩니다. 핵심믿음입니다.

핵심믿음은 나, 타인,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가장 중심적이면서도 근원적인 믿음을 뜻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적으로 적용 가능한 생각이지요. “나는 부족해”,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나는 무가치해”,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사람들은 항상 공격적이야”, “이 세상은 나쁘게만 흘러가”, “삶은 애초에 가치가 없어.” 민수의 경우에는 “나는 부족해”라는 믿음이 자리잡았네요. 핵심믿음은 삶을 살아오면서 겪는 경험들로 인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을 ‘핵심경험’이라고 부릅니다. 핵심경험은 아주 강렬한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민수의 경우에는 대학 입시에서 실패하여 재수, 삼수를 하게 되었는데, 이는 민수에게 아주 강렬한 핵심경험이었습니다.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자리잡도록 만들었죠. 반면 핵심경험은 그보다 잔잔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강렬하진 않지만 불편하고 괴로운 경험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다가 핵심믿음이 자리잡기도 합니다. 엄청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민수가 어릴 적부터 꾸준히 형과의 비교를 받아왔던 것도 보다 잔잔한 핵심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괴로운 믿음을 마주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에 그냥 따르거나(굴복), 맞서 싸우거나(과잉보상), 달아나곤(회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대처로서 마음속에 나름의 규칙, 태도, 가정을 품게 되는데 이런 규칙, 태도, 가정을 ‘중간믿음’이라고 부릅니다. 민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열심히 살아야 해(규칙)”, “삶은 경쟁의 연속이야(태도)”,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가정)” 민수의 경우에는 주로 맞서 싸우는 내용의 중간믿음이 많습니다. 하지만 핵심믿음에 그냥 굴복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거면 시작도 말아야 한다.” 혹은 핵심믿음을 피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봤자 고생만 할 뿐이다.” 이처럼 중간믿음은 핵심믿음에 대한 나름의 대처로서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게 됩니다.

자, 이제 민수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순간을 생각해보죠. 민수의 상사는 민수가 혼자서 진행하기에는 제법 버거워 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겠냐고 민수에게 물어봅니다. 민수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팝콘이 떠오릅니다. “어떻게든 해내야 해.” 이전까지는 이러한 생각들을 그저 무작위적이고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팝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팝콘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형과의 비교를 받아왔던 핵심경험과, 그것으로 인해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는 부족하다”라는 핵심믿음, 또 그 믿음에 어떻게든 대처해보고자 했던 “항상 열심히 살아야 해”, “내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는 중간믿음이지요. 이와 같이 팝콘의 기원을 알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더 쉽고, 그 배경을 안다면 생각과 거리를 두는 일도 한층 더 수월해집니다.

괴로운 믿음에 그냥 따르는 건 당연히 좋지 못합니다. 더 괴로워질 수밖에 없겠지요.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에 굴복해 늘 그런 자세로 삶을 대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회피를 하는 것도 당연히 문제입니다. “나는 부족해”라는 생각을 마주하기 싫어서 도전이나 경쟁 등을 모두 피하고 최대한 안전하게만 행동한다면 삶의 반경은 끝없이 좁아질 것입니다. 반면 사람들은 괴로운 믿음과 맞서 싸우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묻기도 합니다. 싸워서 이겨내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요. 민수의 경우에서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라는 생각은 좋은 동력이 되지 않냐고 묻습니다. 물론 “어떻게든 해내야 해”라는 생각이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심리적 괴로움을 제거하고, 없애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력은 과잉보상에 불과합니다. 이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탑과도 같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할 때에는 기쁘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질 때도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질 때에는 더 큰 좌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 역시 나는 부족했어...” 심지어는 매번 싸워서 이겨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큰 성취를 이룬 뒤에 깊은 우울증을 겪기도 합니다.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거나 직장에 취직한 후 방향을 잃고 무기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 성취를 이룬다고 초라한 내면에 평화가 찾아오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뭔가 충족되지 않은 느낌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어디로 가지...”, “이제 삶의 다음 이야기는 뭐지...” 이러한 대처는 기꺼이 경험하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생각은 ‘나’라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제거하고, 없애고,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핵심 경험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핵심 믿음, 중간 믿음 또한 결국 하나의 개념화된 생각일 뿐입니다. 내 마음속에 어떤 믿음이 자리잡고 있는지, 그것은 어디서 출발했는지 이해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믿음 또한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개념화 생각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지난 과거와 경험들을 가지고 ‘지금’ 의 나를 제한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의 강에 들어가 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을 과거로 돌립니다. 마음속 생각의 강에는 다양한 사건과 기억들이 떠다닙니다. 행복한 기억도 있네요. 사랑받았던 기억, 성취했던 기억, 인정받았던 기억. 그런 기억들 뒤로는 다양한 믿음이 따라붙습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나는 유능해”, “나는 친절한 사람이야.” 제법 괴로운 기억도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괴롭혔던 기억, 실패했던 기억, 무시받았던 기억, 초라했던 기억. 역시 그런 기억들 뒤로 다양한 믿음이 따라붙습니다. “나는 부족해”,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야”,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시간을 조금씩 옮겨가 봅니다. 아주 어릴 적, 10년 전, 5년 전, 3년 전. 혹은 더 멀리 갈 수도 있습니다. 5년 후, 10년 후. 어떤 시간대에 있든 그런 생각들은 그저 나뭇잎 위에 올려져서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하나의 심리적 사건에 불과합니다. 생각은 다양하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생각은 매우 자주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생각은 정말 큰 존재감을 가지고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그것들 또한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입니다. 생각의 강에 앉아 심리적 사건들을 바라보는 나와 그 사건들 사이의 공간감을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한 심리적 사건들과 별개로 ‘나’는 항상 시냇물 옆에서 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삶의 다양한 시기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더라도, 그 경험들로 인해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억, 생각, 감정, 감각은 무수히 다양할 수 있더라도, 그것과 별개로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언제나 강의 옆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단계적으로 제법 많은 것들에 대해 디스턴싱을 진행해왔습니다. 이제는 나의 오래된 기억과 경험, 그리고 뿌리 깊은 생각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가끔은 이러한 작업이 지금까지의 자아를 부정하는 것 같아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오래된 개념화의 틀에 갇히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낼 여지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면 우리는 삶을 스스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면 됩니다.

생각은 ‘나’가 아닙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아 나를 억압하는 개념화된 기억과 생각들도 ‘나’가 아닙니다. 나는 그것들과 함께 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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