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원리, 수용
No.
16

감각도 하나의 심리적 사건이다

원래부터 좋고 나쁜 것은 없습니다. 나의 평가적인 반응이 그렇게 만들 뿐입니다. 이 말은 신체 감각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적용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지행동치료는 원래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지행동치료가 만성요통(CLBP, Chronic Low Back Pain)과 같은 통증을 관리하는 데에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 문제를 정신적인 접근을 통해 치료하는 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통증 문제를 정신적으로 접근하는 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사이비 과학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허나 이미 많은 연구들이 통증의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요?

인지행동치료가 통증을 완화시키는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통증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만성요통을 겪게 되면 삶의 질은 극도로 나빠집니다. 신체 활동은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인간 관계도 줄어들며, 이는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도 큰 타격을 줍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성요통 환자의 마음속에는 강력한 레몬맛 팝콘들이 튀어오릅니다. “통증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은 환자들로 하여금 통증에 더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삶 자체는 통증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흘러갑니다. 주객이 전도됩니다. 이때 인지행동치료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함께 머무르며 그들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생각은 하나의 심리적 사건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것과 별개로 해야 할 것들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두 번째 원리는 통증과의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회피할수록 강해진다. 기꺼이 경험한다면 괴롭지 않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명제를 통증에 적용하는 것이지요. 통증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신체 감각에 집중해보며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관찰하고, 또 기꺼이 경험함으로써 보다 잘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다소 급진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는 점은 잘 이해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 직접 시도해보시길 바랍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문지방에 발가락을 찧는 일이 있을 겁니다. 너무 괴롭지요. 그때 마음속에 “통증과 다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라는 내용의 팝콘이 떠오른다면, 그 통증을 잘 관찰해 보시길 바랍니다. 발가락에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그 느낌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발가락 어느 부위까지 통증이 느껴지고 어느 부위부터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지. 통증은 찌르는 것 같은지, 얼얼한지, 화끈한지. 통증은 점점 더 커지는지, 사그라드는지. 발을 잡고 뒹굴기 전에 관찰자의 시점에서 이를 지켜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고통은 동일하지만 얼마나 괴로운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1963년, 베트남에서는 한 스님이 독재정권의 종교탄압에 맞서 소신공양을 단행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분신을 한 것이지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스님의 머리 위로 휘발유가 부어졌고, 성냥불의 불이 옮겨붙으며 스님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경이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스님이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스님은 불에 타면서도 가부좌를 풀지 않고, 10분 뒤 뒤로 넘어지며 사망합니다. 스님의 소신공양은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독재정권은 붕괴되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월적인 의지와 숭고한 뜻을 기반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걸까요? 우리는 그 어떤 형이상학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불에 타는 고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서 가장 괴로운 것에 속합니다. 어떻게 스님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불길을 참아낼 수 있었을까요? 그 정신과 의지의 크기는 감히 추정할 수 없겠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감각 또한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보고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각도 하나의 심리적 사건입니다. 물론 감각이 거짓이라는 건 아닙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두고 “그건 심리적 사건일 뿐이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감각과 통증은 우리의 신경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적 신호이지요. 가짜는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그 감각이라는 것에도 상당 부분 심리적인 해석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몸이 생각과 감정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답답할 땐 두통이 생기고, 불안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우울할 땐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생각과 감정과 감각은 ‘꾸러미’처럼 떠오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뿐만 아니라 감각과도 새롭게 관계를 맺고 이를 기꺼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각을 기꺼이 경험하기 위해서는 신체 자체를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몸의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지금 신체 감각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가벼운지, 무거운지, 뻐근한지, 통증이 있는지 없는지, 힘이 있는지 없는지 등을 하나씩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이는 스트레칭과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이완을 목적으로 하는 스트레칭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몸을 관찰하는 이유는 불편한 신체 감각을 제거하거나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경험으로서 받아들이고 관찰하며 기꺼이 경험하기 위함입니다. 신체 감각을 이렇게 자각하는 것은 ‘꾸러미’로 떠오르는 각각의 요소에 대한 경험의 본질을 변화시키며, 결국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대한 경험 자체를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것들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새롭게 관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반드시 부정적인 경험을 마주했을 때만 기꺼이 경험하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만히 누워서 스트레칭을 하며 관찰해도 좋습니다. 물론 이완도 되겠죠. 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닙니다. 이완을 위해 감각을 바라보는 건 아닙니다. 그 모든 방법들의 목적은 행복이나 이완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완은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부가적인 이점일 뿐입니다. 본질은 내용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우리는 심리적 경험과 새로운 관계 맺기에 집중합니다. 감각과도 동일한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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