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원리, 수용
No.
13

텅빈 마음은 목표가 아니다

회피할수록 더 강해집니다. 생각과 감정을 외면하고, 통제하고, 제거하고, 교정하고자 하면 도통 마음처럼 되지 않고 그것들의 존재감만 더 부각될 뿐입니다. 악순환을 밟는 것이 뻔한 일임에도 우리는 왜 계속 그러는 것일까요? 우리는 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회피하려고, 없애려고, 통제하려고,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요? 우선 마음은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쓸 뿐이기 때문입니다. 10번째 명제에서 살펴본 내용이지요. 이는 생물학적, 뇌과학적 본능과도 같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을 발견해서 없애라”라는 교리는 좀처럼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애초에 마음이란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는 심리적, 사회적인 본능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텅 빈 마음을 지향합니다.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지향합니다. 긍정적이고 자기확언적인 상태를 지향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찾아나섭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마음속 번민이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잡한 머릿속이 고요하게 정리될 수 있을까?” 하필 또 우리 주변에는 그런 목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가볍게는 작가와 유튜버 같은 사람들부터 더 나아가서는 종교적 지도자까지. “마음속 모든 근심과 걱정을 떨쳐내세요”, “궁극적인 평온을 위해 구원을 얻으세요” 이런 메시지는 마치 지금 우리의 상태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아, 누군가는 정말 텅 빈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나도 저렇게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싶어.” 우리는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메시지들에 이끌리게 됩니다.

텅 빈 마음을 목표로 하자는 생각은 인지치료, 행동치료, 마음챙김 명상 등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기법들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인지치료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은 그들이 수용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어설픈 치료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왜곡된 생각을 하게 돼요. 과도하게 걱정하고, 미래를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생각하죠. 스스로에 대해서도 너무 편향된 평가를 하곤 해요. 그건 당신이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랍니다. 우울증 때문이에요. 자, 우리에겐 12가지의 인지 왜곡이 있어요. 지난번에 말했던 당신의 생각은 이 종류의 왜곡에 해당하는 것 같네요. 한 번 같이 평가해 볼까요? 거봐요. 제법 잘못된 생각이죠? 지금 우리 생각에는 왜곡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명쾌해 보입니다. 왜곡을 찾아주니 문제가 해결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편하기도 합니다. “왜 자꾸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걸 어떡해.” 그래도 열심히 따라갑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끊임없이 교정하고 바꿔나가며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목표는 더 이상 왜곡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지요. 문제가 없는 생각들로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끊임없이 되새김질됩니다.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땐 삶 자체가 ‘더 나은 생각하기’를 목표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내가 더 원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수단과 목표가 뒤바뀝니다.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끝내 스스로에게조차 수용될 수 없습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치료는 실패합니다.

행동치료에서도 동일합니다. 우울증의 치료에는 행동활성화라고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해 활동 수준을 늘려나가며 에너지를 높이는 것이지요. 어설픈 치료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에너지 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해요. 일단 몸이 움직여야 해요. 그래야 활기가 돌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지금 당장은 내키지 않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움직이기 힘들겠죠. 그래도 움직여야 해요. 일단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하나씩 과제를 해나가며 활동 수준을 높여보죠.”

그들은 무기력하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단은 움직여야 무기력이 해결된다는 식의 순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조금 더 숙련된 치료자는 더 합당한 전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겠다는 마음이 들기 전에 일단 움직이는 게 중요합니다. 기분이 아니라 계획에 따라 활동을 구조화하세요.” 매우 합당한 말입니다. 중요한 원리이지요.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생각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튀어오르는 것이라는 점, 부정확하고 편향적이며 지나치게 개인에 초점이 쏠려 있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점, 고통은 불가피하며 오히려 회피할수록 강해진다는 점, 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훈련하기 전에는 생각과 감정에 일치되지 않는 행동을 실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맑고 깨끗한 마음, 의지적이고 희망찬 마음이 선행되어야 행동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도 행동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가 또 실패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시도와 실패 사이에서 자책과 회의는 깊어집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치료는 실패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설픈 명상 지도자들은 은연중에 마음을 비우는 것을 주입시킵니다. 맑고 청아한 마음. 그 모든 번민과 혼란이 없는 깨끗한 마음. 궁극의 평화. 이런 상태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마음챙김 명상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명상을 수련한 지도자들조차 텅 빈 마음을 지니고 있진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수많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피어오릅니다. 팝콘 기계는 주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그저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오르고 또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어떤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이 마음속에 피어오르는지 알아차릴 뿐입니다. 교정하고 바꾸고 싶은 충동이 드는 대상이 무엇인지 인지할 뿐입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내버려둡니다. 없애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함께 머무르며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텅 빈 마음을 좇는 순간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생각을 멈출 방법을 찾는 순간부터 모든 게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그 목표를 위해 명상을 이어나가지만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마음속 번민은 그칠 줄 모릅니다. 오히려 일주일에 일곱 번, 족히 4-5시간은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는 데에 시간을 쓰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호흡으로 돌아오는 명상 연습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도피처로 전락합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크게 바뀐 건 없습니다. 명상은 실패합니다.

‘텅 빈 마음’은 파랑새입니다. 누구도 약속할 수 없었던 유토피아입니다. 텅 빈 마음은 목표가 아닙니다. 생각을 그만하고자 애쓰면 더 생각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알려진 그 모든 방법들은 고통을 제거하거나 관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생각과의 관계를 다시 맺고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 모든 방법들의 목적은 행복이나 이완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순간을 그것들로 가득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더 궁극적인 자유를 얻는 것이지요. 궁극적인 평온에 도달하는 방법은 노력해서 그것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바꾸고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히려 생각과의 관계를 다시 맺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에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정신 없이 좇던 파랑새를 놓아주는 순간 비로소 하늘이 그토록 맑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텅 빈 마음은 목표가 아닙니다.  
회피할수록 강해질 뿐입니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부디 이 말이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해로부터 받아들여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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