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원리, 수용
No.
11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생각은 자동적으로 떠오릅니다. 그러한 생각은 레몬처럼 상징적인 효과를 발휘하죠. 사실 살펴보면 그 생각들은 정확하지 않고, 부정적인 편향을 지니며, 우리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면 정신 없이 생각을 따라가죠. 생각과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집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음이 애초에 문제 해결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없애라”라는 말은 마음의 신조와도 같습니다.

디스턴싱은 내용을 바꾸고 대체하고 교정하는 것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물론 생각을 검토해 보며 때론 생각이 부정확했다는 것을, 때론 생각이 편향적이었다는 것을, 때론 생각이 지나친 책임감을 요구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죠. 중요한 건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 자체를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살펴보았더니 그것이 종종 믿을 만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를 새로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린 내용을 없애고 올바른 내용으로 가득 채우자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고통(pain)을 겪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부모님과 작별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좀처럼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도 있습니다. 사업이 망해버려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멸시당하고 깊은 모멸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수년 동안 노력하여 준비했던 시험에서 보란듯이 낙방하기도 합니다.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하고, 투자했던 것들이 잘 풀리지 않아 오히려 큰 손실을 보기도 합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들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고통스러운 생각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 방향이 맞을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자주 피어옵니다. 때론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우울, 불안, 후회, 분노, 짜증, 권태, 회의, 자책, 죄책, 수치스러움. 이런 생각과 감정들 또한 피할 수가 없습니다. 즉, 고통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한편 인간은 괴로움(suffering)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통을 마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움은 고통과의 싸움 그 자체에서부터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힘든 감정과 생각, 불쾌한 기억, 원치 않는 충동과 감각을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심리적인 전쟁을 치릅니다. 그 과정에서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앓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울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불안한 감정을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누군가는 삶의 거의 모든 시간을 그 일에 할애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인생은 고단하게만 흘러갈 뿐입니다. 하지만 반면 같은 고통을 마주하더라도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그것에 매달리지 않고 삶을 다시 앞으로 전진시키는 사람들이지요. 모든 게 망할 것 같았던 순간에서 마음을 다잡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결국 남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극악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오랜 우울증의 병력을 벗어던지고 아주 풍유로운 인생을 향유하는 사람들. 이들도 고통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괴로움에 잠식되지 않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은 다릅니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입니다. 이는 석가모니의 말입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을 말끔히 없앨 순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아주 긍정적인 생각으로 교정해버릴 수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애초에 마음속 팝콘 기계는 우리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역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때론 원치 않는 레몬맛 팝콘도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평생 그 팝콘을 제거하려고 애쓰지 않을 순 없습니다. 마음의 문제 해결적인 본능에 순응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애초에 되지 않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만 더 되새김질하고, 또 다시 커진 감정을 없애려고 노력하며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지 않을 순 있습니다. 그저 생각을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하고, 거리를 둔 상태로, 다시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마 다음과 같이 생각했던 분들도 있을 겁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나는 왜 이것을 극복할 수 없지?”, “어떻게 하면 삶은 행복으로 가득찰 수 있을까?”, “사람들은 너무도 행복해 보여. 나는 왜 저렇게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뭐가 잘못된 걸까?”, “인생은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 제가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나도 힘들고, 저들도 힘듭니다. 고통은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 보일 뿐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만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도달해야 할 이상’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저마다의 심리적 고통을 안고 살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며 그런 순간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것에 대해 얼마나 괴로워하며 삶을 보낼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이 사실은 보잘것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정말 소수만 겪을 법한 불행한 사건들의 무게감을 폄하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안타깝고 위로해야 할 일이지요. 하지만 생각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말끔히 뽑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매달리며 괴로워하지 않을 순 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인간의 괴로움은 왜 이토록 보편적인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왜 정신건강 문제는 유일하게 인간에서만 이토록 광범위하고 강하게 나타나는지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의식을 가진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나’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상징적인 의미를 활용할 줄 알고, 심지어 그것을 언어라는 형태로 구현해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인간의 괴로움은 보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을지언정, 그것에 매달리며 괴로워하지 않을 순 있습니다. 내용을 바꾸고 없애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그것과의 관계를 다시 맺을 순 있습니다. 생각은 그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입니다. 부정적인 심리적 사건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해서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이 글에서는 마음에 대한 그 어떤 영적인 색채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이 표현만은 마음에 담아둘 만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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