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자주 던지는 첫 질문은 “잘 지내셨나요?”다. 이에 “잘 지냈어요” 또는 “힘들었어요”와 같은 단편적인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상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여러 추가 질문이 주어진 뒤에 수면 위로 올라오는 편이다. 의사와 2~3주, 1개월 또는 그 이상의 간격을 두고 만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지나간 하루하루의 상태를 곧바로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 잘 지냈어요”라고 대답하더라도 잘 지내지 못한 날들도, 특히 힘들었던 순간도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멀어지면서 그때 느꼈던 감정에 대한 기억은 무뎌지지만, 그 감정들은 분명 누적되어 우리의 마음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정신의학 저널인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의 2024년 7월호에 흥미로운 연구 한 편이 소개되었다. 바로 ‘증상의 일중변동과 일간변동이 클수록 우울·불안이 심하다(Greater within- and between-day instability is associated with worse anxiety and depression symptoms)’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본 연구에는 브라질에 거주 중인 성인 153명이 포함되었다. 참가자는 14~44일 동안 하루 5번에 걸쳐 자신의 감정, 식욕, 졸음, 집중력, 에너지 수준을 실시간으로 기록했다. 연구 종료 시점에는 전반적인 우울 및 불안 증상을 파악하기 위해 우울증 건강설문(PHQ-9)과 범불안장애 척도(GAD-7)를 작성했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다양한 통계 분석을 실시해 증상의 변동성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다.
연구 결과, 실시간으로 느끼는 슬픔과 불안의 일중변동 및 일간변동폭이 큰 참가자가 더욱 높은 수준의 우울과 불안을 보고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실시간으로 더욱 심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고 심한 변동을 보이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감정 조절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인지 전략이 부족하거나 어떠한 이유에서든 감정 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불안, 우울 등의 정신과적 증상을 겪게 될 위험이 크다. 이때 불안과 우울에서 자주 나타나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 역시 잦은 감정 변화에 기여하게 된다. 결국 기분의 변동폭이 클수록 우울과 불안에 취약하며, 우울과 불안은 또다시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드는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졸음, 식욕, 집중력 및 에너지 수준의 일간변동폭이 커질수록 PHQ-9 및 GAD-7 점수가 높아지는 양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이는 생체리듬의 불균형과 연관되어 있다. 불규칙한 수면, 식사 및 일과는 생체리듬을 교란시킨다.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는 생체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이처럼 생체리듬의 구성요소가 큰 변동폭을 보인다면 장기적으로 정신건강에 여러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불안, 우울 등의 증상을 겪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자주 관찰하고 돌보는 게 필요하다. 잘 지냈느냐는 질문을 듣고 그제야 어떻게 생활했는지 떠올릴 게 아니라 매일, 또는 더 자주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보자. 감정기록지를 작성하면서 마음 상태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도 마음을 관찰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Nexha A, Pilz LK, Oliveira MAB, et al. Greater within- and between-day instability is associated with worse anxiety and depression symptoms. J Affect Disord. 2024;356:215-223. doi:10.1016/j.jad.2024.04.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