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은 다르다.
외로움은 기본적으로 결핍의 상태다.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친밀감을 갈망하지만 결국 그것이 충족되지 못해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수많은 연구들은 외로움이 우울, 불안 등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의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 고독은 조금 다르다. 사전적인 의미는 말 그대로 ‘혼자 있는 상태’지만, 본래는 주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독은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여유를 누린다는 의미에 더욱 가까워졌다. 유명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는 즐기는 사람이지, 처량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고독을 선호하는 사람이 회복 탄력성이 더욱 뛰어나고 정신질환에 이환될 위험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외로움은 연약한 감정이고, 고독에는 어떤 멜랑콜리한 우아함이 있는 걸까? 권위 있는 정신의학 학술지인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2024년 11월 자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되었다. 바로 ‘고독 선호의 역설: 사회적 고립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Preference for solitude paradox: The psychological influence of social isolation despite preference)’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는 일본에서 진행되었으며, 약 9,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여기에는 ‘사회적 고립’의 유무가 포함되었는데, 여기서 사회적 고립은 ‘함께 살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 미만으로 접촉하는 상태’로 정의되었다. 고독을 즐기는 정도를 평가하는 ‘고독 선호’ 척도 역시 평가 항목에 포함되었으며, 이와 함께 전반적인 정신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로 심리적 스트레스, 행복감 및 외로움을 평가했다.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고립 및 고독 선호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사회적 고립은 정신건강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고립을 보고한 사람은 스트레스 수준이 더 높았고, 낮은 행복감과 심각한 외로움을 경험할 확률이 높았다. 선행 연구와 완벽히 일치하며,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고독 선호를 살펴보면, 나이와 관계없이 고독 선호가 높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크게 느끼고 행복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독을 즐기는 마음가짐이 사회적 고립에서 기인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완충하고 정신건강에 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일부 선행연구에 상반되는 결과였다. 본 연구에서는 오히려 고독 선호는 사회적 고립과 비슷한 수준으로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추가 분석을 진행했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독을 선호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적 상호작용을 더욱 힘들어하는 경향이 관찰되었고, 이로 인해 외로움과 심리적 스트레스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 관계에 대한 부담감’이 고독 선호 및 정신건강 지표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매개 요소라는 의미다. 즉, 고독을 선호하는 사람은 실제로 고독을 완전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이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기저에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결국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결국 혼자 보내는 시간은 그 시간대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쌓는 인간관계는 그 관계대로 즐거워야 건강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고독의 역설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에 스스로 혼자 지내는 걸 즐긴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면, 진정으로 고독을 즐기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피로를 느껴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Sakurai R, Sakurai M, Suzuki H, Fujiwara Y. Preference for solitude paradox: The psychological influence of social isolation despite preference. J Affect Disord. 2024;365:466-473. doi:10.1016/j.jad.2024.08.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