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감’과 ‘우울증’은 분명히 다르다. 우울감과 더불어 의욕 저하, 흥미 저하 등의 우울 증상은 살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반면, 우울증은 일련의 증상이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내릴 수 있는 임상적인 진단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붙일 수 없는 우울감 또는 우울 증상은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걸까? 답은 절대 그렇지 않다. 물론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 명확한 스트레스 사건으로 비교적 가벼운 우울감이 나타났다면 유발 요인이 사라지면 증상도 자연스럽게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되면 우울증으로 상태가 나빠지거나 만성화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우울감이 우울증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예방할 방법을 연구해왔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 최고 정신의학 저널 The Lancet Psychiatry의 2024년 12월호에 심리치료의 우울증 예방 효과를 분석한 연구가 소개되었던바 있다. ‘성인에서 우울증을 예방하는 심리적 개입(Psychological interventions to prevent the onset of major depression in adults: a systematic review and individual participant data meta-analysis)’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함께 정리해보자.
본 연구는 기존에 축적된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체계적 문헌고찰 방식을 채택했다. 분석 대상에 포함된 30여 편의 선행연구는 모두 무작위 대조군 연구였다. 일정 수준의 우울 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나 우울증으로 진단받지는 않은 성인을 대상으로 실험군(심리치료)과 대조군(대기, 플라시보 등)에 무작위로 배정했다. 이후 12개월 동안 참가자를 대상으로 주기적인 임상 면담을 시행해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수준의 우울증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추적했다.
연구 결과, 심리치료를 받은 참가자는 대조군에 비해 우울증 발생 위험이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직후에는 발생 위험이 약 43% 감소했으며, 이러한 예방 효과는 치료가 마무리되고 6개월 후까지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12개월 후에는 우울증 위험이 33% 정도 감소했으나, 아쉽게도 그 이후에는 우울증 발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개별 심리치료 방식에 따라서 예방 효과에 차이가 있었다. 가장 일관성 있게 뛰어난 효과를 보인 방식은 인지행동치료(CBT)로, 우울증 발생 위험을 30%가량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축된 생활과 우울감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긍정적인 활동 수준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행동 활성화(BA) 역시 CBT와 더불어 우수한 효과를 보였다. 특히 증상이 가벼운 사람보다도 초기에 우울 및 불안 점수가 높은 사람에게 예방 효과가 더욱 두드러졌다.
꼭 우울증이라는 정식 진단을 받아야만 치료가 시작되는 게 아니다. 초기에 심리치료를 활용하면 우울감이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본 연구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디지털 기반 치료가 대면 치료와 동등한 효과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몇몇 연구는 전화 등의 비대면 치료가 대면 치료보다 효과가 우월하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시간적, 지리적 제약 때문에 치료를 망설였다면 접근성 좋은 비대면 심리치료를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Buntrock C, Harrer M, Sprenger AA, et al. Psychological interventions to prevent the onset of major depression in adults: a systematic review and individual participant data meta-analysis. Lancet Psychiatry. 2024;11(12):990-1001. doi:10.1016/S2215-0366(24)00316-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