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구, 또는 가까운 사람의 사별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사별의 슬픔과 아픔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에 밀려오는 우울감, 공허함, 죄책감 등의 정신적인 어려움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주변 사람들과 사별의 고통을 나누고 나면 차츰 일상생활을 회복해나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고인을 잊는 건 아니지만 슬픔과 상실감의 자리를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운 추억으로 치환하고 격렬한 감정을 잘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강력한 사별의 상처는 마음속에 계속 남아 감출 수 없는 흉터를 만들기도 한다.
사별의 아픔과 관련해서 세계적인 의학 저널인 JAMA Network Open에 2024년 6월 자로 연구 한 편이 게재되었다. ‘사별을 경험한 성인에서 정신질환의 동반 유병률(Prence and Co-Occurrence of Psychiatric Conditions Among Bereaved Adults)’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진은 사별을 겪고 나서 찾아오는 정신적인 어려움이 어떤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조사하고자 했다.
연구는 사별의 경험이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평균 연령이 약 41세인 2,034명의 성인이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연구진이 배포한 설문조사는 다양한 정신질환의 유무를 평가하기 위한 척도로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우울증, PTSD, 그리고 복합성 애도(complicated grief)’라고도 불리는 지속성 애도 장애가 포함되었다.
여기서 지속성 애도 장애라는 질환이 다소 생소한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까운 사람의 사별을 겪고 나서 1년이 넘게 지나도 고인에 대한 그리움에 깊이 잠겨 있거나 고통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 내릴 수 있는 진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별로 인한 고통이 장기간 지속될 때 우울증의 진단기준을 충족하면 우울증으로 분류된 반면, 최근 사별로 인한 고통의 특수성이 인정되어 지속성 애도 장애라는 진단명이 새로 생겼다.
연구 결과, 사별 경험이 있는 성인 중 약 20%가 지속성 애도 장애의 진단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사별을 겪은 성인의 80%는 정상적인 애도 반응으로 끝나지만 20%는 고인에 대한 과도한 그리움과 고통이 1년 이상 지속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우울증의 경우에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성인의 30% 가량에서 나타났다. 우울증의 진단기준에 해당하는 심한 우울감, 무기력감, 죄책감, 수면 및 식이 문제 등이 애도하는 과정에 매우 흔히 동반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TSD 역시 높은 동반 유병률을 보였는데, 참가자의 약 34%에서 PTSD가 동반되었다.
사별 중에서도 자연재해, 자살, 살인 등의 외상적 상실을 겪은 경우 앞서 언급한 질환의 동반 유병률이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외상적 상실 경험이 있는 성인에서는 PTSD와 우울증의 발생률이 각각 40%와 36%에 육박했다.
외상적 상실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의 동반 유병률을 높이는 더 많은 위험요소가 소개되었는데,
1. 사별한 사람과 심리적인 친밀도가 높을수록 지속성 애도 장애, 우울증 및 PTSD의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
2. 또 오래전 사별을 경험한 것보다 사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에 정신질환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3. 마지막으로 나이가 어릴수록 동반 정신질환이 더욱 흔했다.
이번 글을 통해 살펴봤듯이, 사별은 다양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애도하고 마음의 휴식을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당하려고 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슬픔과 위로를 나누고, 필요하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Rheingold AA, Williams JL, Bottomley JS. Prevalence and Co-Occurrence of Psychiatric Conditions Among Bereaved Adults. JAMA Netw Open. 2024;7(6):e2415325. Published 2024 Jun 3. doi:10.1001/jamanetworkopen.2024.15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