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이 최저를 찍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부모들은 한 명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대단한 노력과 정성을 쏟고 있기도 하다. 노력의 시작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똑똑하고 정서가 안정된 아이로 키워내기 위해 좋은 책과 그림을 보여주거나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태교에 집중하기도 하고, 조기 경험을 중요시하는 마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휴양지로 태교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태아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사실 정신의학 분야에서 축적된 연구에 따르면, 태아의 발달에 있어 태교보다는 산모의 정신건강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글에서는 임신한 산모의 정신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보고자 한다.
권위 있는 정신의학 저널인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소개된 논문인 ‘부모의 주산기 우울 및 불안이 영아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종단 연구(Association of maternal and paternal perinatal depression and anxiety with infant development: A longitudinal study)’를 함께 살펴보자.
연구진은 출생전후기에 나타날 수 있는 부모의 우울과 불안이 출산 후 아이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자 했다. 호주에서 진행된 본 연구에는 16세 이상의 산모 1,539명과 그의 파트너 793명이 포함되었다. 참가자는 출산 전후로 에든버러 출산 후 우울 척도(EPDS) 및 우울, 불안 및 스트레스 척도(DASS-21)를 작성해서 증상의 유무를 확인했다. 해당 척도에서 중등도 이상의 우울 또는 불안이 확인된 경우 각각 우울 및 불안 그룹으로 분류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아이가 12개월이 되면 베일리 영유아 발달검사(Bayley-III)를 실시해 전반적인 발달을 평가해서 부모의 정신과적 증상과 아이의 발달 간에 연관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산모의 정신건강이 아이의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 이전 설문조사에서 산모가 우울 그룹으로 분류된 경우, 영유아 발달검사상 아이의 사회정서 발달 및 언어 발달이 유의미하게 저조했다. 우울뿐만 아니라 불안 역시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졌다. 심각한 불안을 호소하는 산모에게 태어난 아이는 언어 발달이 또래에 비해 더뎠다. 더 나아가, 출산 후 8주경 산모의 불안은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 저조와 연관성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요 우울 장애, 불안 장애 등의 임상적인 진단의 여부는 영아 발달 결과와 유의미한 관련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모가 꼭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경우에만 영아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산모가 주관적으로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모의 정신건강이 어떻게 아이의 발달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출산 이전에 산모가 우울 및 불안 증상을 경험하는 경우, 태반 혈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태아의 코티솔 노출이 증가해서 스트레스 반응을 담당하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의 조절 이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출산 후 산모의 증상은 아이와의 상호작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잉보호 등 정상적인 영아 발달을 방해하는 양육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 모든 관심이 오로지 아이를 향하기 일쑤다. 하지만 산모의 우울과 불안을 예방하고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것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하다. 어쩌면 똑똑한 아이는 똑똑한 산모가 아니라 평온하고 행복한 산모가 만들지도 모른다.
Rogers AM, Youssef GJ, Teague S, et al. Association of maternal and paternal perinatal depression and anxiety with infant development: A longitudinal study. J Affect Disord. 2023;338:278-288. doi:10.1016/j.jad.2023.06.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