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을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갈 때가 많다. 마음 가는대로.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아주 좋은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화가 필요할 때는, 혹은 삶에 더 전념하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관찰자 모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지치료의 묘미는 자신으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해 관찰자 입장을 취하도록 하는 데 있다.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마치 유체이탈하여 자신을 바라보는 것처럼 스스로를 면밀하게 관찰해 본 적이 있는가? 무엇을 느끼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고, 행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찰하여 그 정보를 얻어본 적이 있는가? 이 측면에서 인지치료는 사람들에게 과학자가 되길 요구한다. 정보를 수집하고, 때로는 어떤 가설을 세워서 나에게 적용시켜보고, 그 결과를 살펴보고, 또 다른 가설을 세우고. 실패해도 상관없다. 실험은 늘 얻는 상황이 된다. 무언가를 배우든,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를 발휘하든, 의지를 불러일으키든.
관찰자 모드로 스스로를 대하는 일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꾼다. 우리가 스스로를 객관적인 대상으로서 관찰하기로 결정할 때, 우리가 생각, 감정, 감각을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보기로 결정할 때, 우리는 현실 회피자에서 현실 검증자로 변모한다. 피하고, 거부하고, 외면하려고 애쓰기 보다, 기꺼이 경험하고, 마주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또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회피하고 있는 것에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마음에 와닿는 예시가 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여 혼자서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 일이 많다. 실력이 가장 빠르게 늘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자신의 연주와 노래를 녹음해 보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당시에는 모른다. 나의 목소리가 어떤지, 음정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표현이 너무 투박하거나, 너무 섬세하진 않았는지. 하지만 녹음된 소리를 들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처음에는 그 과정이 매우 어색하다.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아주 불편하다. “뭐야. 내 목소리가 저렇다고?” 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그 목소리를 좋아하게 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언젠가는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잘 관찰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음악이 본업인 사람들은 그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내면에 대해서도 정확히 동일하다. 디스턴싱(distancing), 즉, ‘나’와 거리를 두고 자신을 관찰하다 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하다. 어딘가 부족하고 뒤틀린 자신을 바라볼 때면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또한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때론 자신의 연약한 모습이 외려 사랑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점차 한 단계 더 성숙하고 단단한 내면을 가지기 위한 훈련을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삶을 살아가는 매순간 ‘나’의 가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디스턴싱의 오랜 유저인 허니비님께서는 “마음속에서 유배 보내기”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심리적인 괴로움을 느낄 때 일상은 잘 지내되 마음속에서는 이를 감정적으로 분리하여 거리를 두고, 마음속 어딘가로 유배 보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에 수동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어떤 경험들은 여전히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채, 그냥 마음속 어딘가 저편에 내버려두기로 선택하는 것. 이 얼마나 자유롭고 성숙한 삶의 태도인가.
생각은 ‘나’가 아니다. 감정도 ‘나’가 아니다. 관찰자로서 바라보면 이는 모두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이다. 마음은 그것이 ‘나’가 아님을 인정하고 거리를 둔 채 관찰하려고 할 때 비로소 나의 통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홍승주, M.D. CEO at Orwell Heal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