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마음으로 떠난 해외여행 중,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미묘하게 무례하고 무시하는 듯한 응대를 받고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는가? 꼭 해외가 아니더라도 학교나 직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방이 한 말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은근한 공격으로 느껴져서 불편했던 경험은 없었는가? 이처럼 노골적인 차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포장된 말 속에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의도가 느껴졌다면, 미세차별(microaggression)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차별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부당한 대우라고 하면, 미세차별은 무의식적이거나 은연중에 드러나는 차별적 언행과 행동이다. 최근 몇 년간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이러한 미세차별이 정신건강의 맥락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활발히 연구해왔다. 정신의학 저널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2024년 10월호에도 ‘젊은 성인에서 차별과 미세차별이 불안, 우울 및 수면에 미치는 영향(Microaggression and Discrimination Exposure on Young Adult Anxiety, Depression, and Sleep)’이라는 제목의 연구가 소개되었다.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자.
미세차별은 그 개념이 미묘한 만큼,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인종에 따른 미세차별이 가장 흔하다고 한다. 예컨대 미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특정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을 보고 미국인이 아닐 것이라는 가정 하에 “진짜 고향이 어디냐”라고 묻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또는 겉모습만을 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닐 것이라고 넘겨 짚고 영어 실력을 칭찬하면서 예상 밖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이러한 예시가 모두 미세차별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인종뿐만 아니라 성별, 성정체성, 학력 등 다양한 요소에 기반을 둔 미세차별이 존재한다.
연구진은 차별 및 미세차별의 경험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48,606명의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자신의 노골적인 차별 경험과 미묘한 미세차별 경험을 보고했으며 우울, 불안 및 불면에 대한 자기 보고식 설문지를 작성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통계 분석한 결과, 차별과 미세차별 모두 우울을 비롯한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을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차별이 미세차별보다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차별은 우울의 위험을 60%, 그리고 불안과 불면의 위험은 각각 46%, 54% 높였다. 미세차별은 이러한 문제의 위험을 24~42%가량 높였다. 그러나 고려해야 할 점은, 미세차별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약할지라도 여전히 통계적으로 유의미했으며 일상에서 차별보다 미세차별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경향성은 백인, 아시아인 등 인종을 막론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관찰되었다.
그렇다면 차별과 미세차별은 어떤 식으로 정신건강을 위협할까? 차별을 경험하게 되면 우울과 불안을 유발하는 공통 요인으로 작용하는 역기능적 사고가 강화된다. 그중 특히 반추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차별 경험을 곱씹으며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노출되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반추 회로가 견고해진다. 또한 건강한 자아상을 지녔던 사람도 차별을 경험할수록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반추, 부정적인 자아상, 낮은 자존감, 소외감은 결국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세차별은 말 그대로 미세하고 은밀하게 일상 속에 숨어있는 만큼 더더욱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나 자신도 은연중에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자.
Rastogi R, Woolverton GA, Lee RM, et al. Microaggression and discrimination exposure on young adult anxiety, depression, and sleep. J Affect Disord. 2024;363:141-151. doi:10.1016/j.jad.2024.07.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