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예방은 치료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다양한 방법들이 우울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왔다. 급성기에 효과가 좋았던 항우울제를 일정 용량 장기간 복용하기도 하며, 최근 여러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인지행동치료 또는 마음챙김 기반 접근방식도 우울증 예방에 있어 항우울제와 동등한 효과를 낸다는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한편 투약 및 심리치료와 같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치료가 있는 반면, 일상에서 혼자서도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물론 많다. 그중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운동인데, 평소에 활동량을 늘리고 땀이 흐를만한 강도의 운동을 병행하면 우울 증상을 예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운동보다 더욱 간단하고 접근성이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빛을 쬐는 것이다. 권위 있는 정신의학 저널인 Acta Psychiatrica Scandinavica에 2021년 4월 자로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되었다. 바로 ‘아침 빛 노출이 조울증에서 우울 삽화를 예방한다(Preventive effect of morning light exposure on relapse into depressive episode in bipolar disorder)’는 제목의 논문이다. 함께 차근차근 살펴보자.
일본에서 진행된 본 연구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진단된 202명의 환자가 참가했다. 연구 시작 당시 우울 또는 조증, 경조증 삽화를 겪고 있지 않은 환자만 참여하였으며, 7일간 주변 햇빛 노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손목에 착용했다. 이후 우울 삽화 등의 기분 삽화가 재발하지 않는지 12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했다. 마침내 햇빛 노출과 기분 삽화의 재발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 202명의 참가자 중 38%에 해당하는 78명이 우울 삽화가 재발했다. 이때 햇빛 노출에 따라 재발 위험이 다르게 나타났는데, 기상 후 취침까지의 주간 햇빛 노출이 높은 그룹에서는 재발 위험이 약 30%가량 줄어들었다. 특히 기상 후 오후 12시까지 아침 시간의 햇빛 노출이 중요한 것으로 보였는데, 아침 햇빛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재발 위험 방지 효과는 약 40%까지 더욱 늘어났다. 반면 오후 시간의 햇빛 노출은 우울 재발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아침에 충분한 빛을 보는 게 핵심이라고 유추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점은, 아침에 쬐는 빛의 조도가 중요하다는 결과다. 특히 1,000럭스 이상의 밝은 빛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우울 삽화의 재발 위험이 40%가량 감소했다. 맑은 날의 해돋이 또는 해넘이가 400럭스 정도에 해당하며, 낮에는 조도가 10,000-25,000럭스까지 올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1,000럭스는 일상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정도다. 책상 스탠드나 일반적인 스튜디오 조명이 약 1,000럭스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아침에 빛을 쬐는 시간에 따라서도 우울 삽화의 재발 위험이 다르게 나타났다. 총 노출 시간에 따라 상(매일 19.5분 이상), 중(8.2~19.5분), 하(8.2분 미만)로 나눴을 때, ‘상’ 그룹에서 재발 위험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그렇다면 아침 햇빛이 왜 중요할까? 우리 몸에는 빛과 어둠의 주기에 따라 작동하는 생체 시계가 있다. 아침 햇빛은 이러한 생체 시계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생체 시계는 다양한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하기 때문에 기분과 수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아침에 충분한 양의 햇볕을 쬐어 바이오 리듬을 깨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반대로, 아침 햇빛이 부족하게 되면 리듬에 혼란이 생겨 수면이 불규칙하고 기분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아침 햇살을 맞는 간단한 방법으로 우울증 예방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연구의 결과가 말해주듯, 아침에 20~30분만 투자해서 햇빛을 쐬자. 야외에서 걷거나 운동하면 더더욱 좋겠지만, 여건이 안 된다면 창가에 앉거나 햇볕을 쬐면서 아침 식사를 해도 좋다.
Esaki Y, Obayashi K, Saeki K, Fujita K, Iwata N, Kitajima T. Preventive effect of morning light exposure on relapse into depressive episode in bipolar disorder. Acta Psychiatr Scand. 2021;143(4):328-338. doi:10.1111/acps.13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