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너무나도 다양한 얼굴을 가진 질환이다. 같은 우울증일지라도 사람마다 경험하는 증상과 불편함이 다를 뿐만 아니라, 치료에 대한 반응과 장기적인 경과 측면에서도 차이가 큰 편이다. 예를 들어, A는 실직한 뒤 의욕 저하 및 식욕 감퇴 등의 우울 증상을 겪다가 수 개월 간의 심리치료를 통해 증상이 호전되어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반면 B의 경우, 특별한 사건이나 변화 없이 찾아온 우울감, 흥미 저하, 불면증 등을 호소하게 되었으며 다양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였으나 별다른 호전 없이 불편감이 지속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쉽게 좋아지고 어떤 사람이 나아지기 힘든지, 그리고 A와 B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23년 12월, 국제 정신의학 학술지 Psychotherapy and Psychosomatics에 우울증의 예후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되었다. 바로 ‘조기 발병 만성 우울증 환자의 장기 경과에 대한 군집 분석(Longitudinal Clusters of Long-Term Trajectories in Patients with Early-Onset Chronic Depression)’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진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우울증이 발병한 환자를 오랜 기간 추적해서 어떤 경과를 나타내는지 분석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는 총 188명의 조기 발병 만성 우울증 환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연구 시작 당시 약물치료를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으며, 우울 증상에 대해 총 32회에 걸쳐 인지행동분석 심리치료 또는 지지적 심리치료를 받았다. 연구진은 참가자 188명을 총 2년 동안 추적 관찰하여 우울증의 재발 여부, 증상의 심각도, 치료 여부 등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각기 다른 경과를 나타낸 네 그룹으로 나뉘었다. x축은 주 단위의 시간으로, 추적 시작 시점인 0주부터 종결 시점인 104주까지 표시되어 있다. y축은 전반적인 정신과적 증상의 심각도를 가리키는 지표로서, 숫자가 커질수록 심각도가 높다는 의미다.
참가자의 16%는 증상이 꾸준히 호전되거나 완전한 관해 수준에 이르렀다. 그룹 1의 60% 이상은 공통으로 받은 32회의 심리치료 외에 추가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약물치료를 받은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았다. 그룹 1의 평균 연령은 약 42세로, 네 그룹 중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그룹 1에 속한 참가자는 사회적 기능이 높았고, 어린 시절 정서적 방임을 경험한 비율이 가장 낮다는 특징을 보였다.
참가자의 약 37.2%는 진단 체계상 우울 삽화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경미한 수준의 우울 증상이 유지되었다.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를 받은 비율은 각각 43.7%와 42.9%였으며, 사회적 기능과 성장기 트라우마 노출 이력은 그룹 1과 그룹 3, 4의 중간 수준에 해당했다.
참가자의 약 23.4%는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 증상이 전반적으로 호전되기는 하나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경과를 나타냈다. 추가적인 치료를 요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는데, 그룹 3의 70% 이상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거나 심리치료를 받았다. 약 23%는 평균 9주에 걸친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룹 3의 특징은 사회적 기능이 가장 낮으며, 어린 시절 높은 수준의 정서적 방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약 40%가 우울증에 더해 불안장애를 앓고 있을 정도로 동반 이환률이 매우 높았다.
나머지 23.4%는 매우 불안정한 장기 경과를 보였는데, 그룹 4에 속한 참가자는 2년 동안 중증 우울 증상, 주요 우울 삽화, 그리고 부분 관해 상태 사이에서 오가길 반복했다. 약물 및 심리치료 이용률이 50~70% 정도로 매우 높았지만, 전반적으로 양호하지 못한 치료 결과를 나타냈다. 특징적으로 평균 연령이 48.3세로 가장 높았으며, 미혼 비율도 가장 높아서 사회적 지지가 부족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본 연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우울증은 매우 다양한 장기 경과를 나타낸다. 최소한의 개입만으로도 회복한 그룹 1이 있는 반면, 그룹 3과 4는 더욱 많은 치료를 받았음에도 계속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 어쩌면 애초에 이처럼 너무나도 다른 특성을 가진 집단에 동일하고 획일적인 치료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룹 3, 4는 특징적으로 사회적 지지체계가 부족하고 성장기 트라우마가 두드러졌으며 불안 장애가 빈번히 동반되었다. 환자 개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개입이 필요하며, 직접적인 우울 증상뿐만 아니라 기저의 어려움과 동반 증상을 함께 다뤄야 할 것이다.
Elsaesser M, Feige B, Kriston L, et al. Longitudinal Clusters of Long-Term Trajectories in Patients with Early-Onset Chronic Depression: 2 Years of Naturalistic Follow-Up after Extensive Psychological Treatment. Psychother Psychosom. 2024;93(1):65-74. doi:10.1159/000535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