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하면 어떠한 모습이 연상되는가? 흔히 슬픈 생각에 빠져 눈물을 흘리거나 의욕 없는 상태로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머릿속에 그린다. 하지만 **우울증은 단일 질환이라기보다는, 증후군(syndrome)**에 가깝다. 증후군이란 일련의 증상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우울증은 수많은 증상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증상이 각기 다른 조합을 이루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같은 우울증이라도 어떤 사람은 매일 밤 과거에 후회스러웠던 일에 대해 반추하며 불면증을 호소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오히려 잠을 10시간 이상 과도하게 자거나 식욕이 늘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최근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연령대별로 흔히 나타나는 우울 증상이 다르다. 국제적인 정신의학 저널인 Psychiatry Investigation에 2024년 9월 자로 발표된 ‘한국 성인에서 나타나는 주요 우울 장애의 연령대별 우울 증상(Differences in Depressive Symptom Profile by Age Group in Koreans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Results From Nationwide General Population Surveys)’이라는 논문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진행된 정신질환 역학조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총 30,000명가량의 18세 이상 응답자 중, 지난 12개월 동안 DSM-IV(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상 ‘주요 우울 장애’의 진단기준을 충족하는 우울 삽화를 경험한 691명이 참가자로 최종 선정되었다. 참가자는 연령에 따라 청년층(18~39세), 중년층(40~59세), 그리고 노년층(60세 이상)으로 분류되었다. 각 참가자는 자신이 우울 삽화 당시에 경험한 증상 여부를 나타냈고, 연구진은 회귀 분석을 통해 또 다른 우울 증상의 연관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각 연령층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우울 증상이 다르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우울 증상은 크게 ‘정형(typical)’과 비정형(atypical)’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환자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불면, 식욕 및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정형 우울증에 해당한다. 반면 비정형 우울증이란, 이들 증상의 정반대에 해당한다. 잠을 못 자는 대신 수면 시간이 과도하게 길고, 식욕이 감퇴하는 대신 식욕이 왕성하고 체중이 불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청년층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이러한 비정형 우울 증상이 유의미하게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과다를 호소할 가능성은 약 3배 높았고, 식욕 및 체중 증가는 2배가량 높았다.
노인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우울감을 직접 호소하고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등의 인지 증상이 비교적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고의 속도가 빨라지고 불안을 수반하는 ‘정신운동 초조(psychomotor agitation)’를 경험할 위험이 약 2배 높았는데, 노년기에 흔히 경험하게 되는 은퇴, 상실 등의 사회적 스트레스 요인이 중요한 위험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노년층의 우울증 환자가 불면증을 경험할 확률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2.5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불면증 중에서도 특히 새벽에 일찍 깨어나는 말기 불면증이 약 4배 높았다.
중년층은 고유한 특징을 보이기보다는, 다른 두 연령층의 특징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였다. 죄책감과 과다 수면이 흔하게 나타났으며, 증상이 전반적으로 저녁보다 아침에 더 심해지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갱년기에 일어나는 호르몬 변화가 우울 증상의 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러한 생물학적 요인과 중첩되어 직장 및 가정에서 기인하는 심리 사회적 스트레스 역시 기여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평상시 스트레스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임상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특히 젊은 층에서 호발하는 비정형 우울 증상의 경우, 이를 경험하는 사람이 스스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인식하지 못해 제때 치료적 개입이 이루어지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청년층에서 비정형 우울 증상이 흔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같은 우울증이라도 두드러지는 증상 및 임상 양상에 따라서 도움이 되는 치료와 접근 방법이 아예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평소 마음의 건강상태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Lee J, Kim BS, Cho SJ, et al. Differences in Depressive Symptom Profile by Age Group in Koreans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Results From Nationwide General Population Surveys. Psychiatry Investig. 2024;21(9):1025-1032. doi:10.30773/pi.2024.0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