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싱을 운영하며 제법 많은 감사의 인사나 리뷰를 전달받는다. 물론 디스턴싱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치유하는 건 아니다. 영국의 IAPT도 치료율 50%를 ‘훌륭한’ 성과라고 강조하지 않던가. 항우울제는 분명 효과적인 약물이지만 반응이 좋은 코호트도 있는 반면, 기대처럼 잘 반응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어, 항우울제 반응군을 잘 찾아내는 게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마음을 치유한다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전해온다.
“디스턴싱 덕분에 답을 찾았어요.”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감사한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거봐요. 여기에 구원이 있다고요.”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변화는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도움을 얻었고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모두 스스로가 자신을 일으키고 구한 것이다. 단지 그들 모두 계기가 필요했고, 디스턴싱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물론 우리는 그 계기를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최대한 문턱을 낮춰서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부분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들은 아직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변화는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변화의 힘은 ‘나’에게 있다.
자신의 개선을 특정한 이론이나 방법론 탓으로 귀인(attribution)하는 건 합당하지 않다. 변화를 다른 요인(예, 호르몬의 균형, 멋진 이론) 덕분으로 돌리면 재발 경향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세상엔 좋은 이론과 방법론들이 많다. 꼭 하나만 정답인 것도 아니다. 디스턴싱도 그중 약물을 쓰지 않는 방법들을 정리하여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도구들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직면하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건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고, 진정한 변화와 내적인 성숙은 그 과정에서 발생한다.
누가 뭐래도 변화의 힘은 ‘나’에게 있고, 그 힘은 모두에게 있다. 디스턴싱을 포함한 모든 심리치료 작업들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며 도울 뿐이다. 가장 믿고 의지하고 따라야 하는 건, 어떤 멋진 이론이 아니라, 어떤 멋진 치료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변화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 희망과 열정을 내가 알아차리고 있든,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