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성격과 성향에 관심이 많다. MBTI 열풍만 봐도 알 수 있다. 비슷하게도 정신건강 전문가들 역시 성격과 기질 대해 활발히 연구해왔다. 한 사람이 사고하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고유의 방식인 만큼, 성격은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인자가 되기도, 보호인자로 작용하기도 한다. 성격의 여러 측면 중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진 건 바로 외향성(extraversion)과 내향성(introversion)의 차이다. 바로 MBTI의 가장 앞글자인 E, I와 대응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E와 I 중, 어느 쪽이 정신건강에 이로울까?
임상심리학 저널인 Journal of Psychopathology and Clinical Science에 외향성과 내향성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외향성과 사회적 지지가 우울 및 불안 장애에 미치는 영향(Extraversion and Interpersonal Support as Risk, Resource, and Protective Factors in the Prediction of Unipolar Mood and Anxiety Disorders)’이라는 논문을 정리해보자.
본 연구는 정식적으로 진단받은 정신질환이 없는 534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연구진은 외향성 및 내향성, 그리고 신경증적 성향(neuroticism)을 측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성격검사를 시행했으며, 면담을 통해 평소 얼마나 탄탄한 사회적 관계망은 갖추고 있는지 파악했다. 그리고 3년간 꾸준히 구조화된 임상 면담을 실시하여 주요 우울 장애 또는 불안 장애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높은 외향성을 가진 사람은 주요 우울 장애의 발병 위험이 약 22%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우울증에 대한 보호 효과는 특히 신경증적 성향이 높은 사람에서 두드러졌다. 여기서 신경증적 성향이란, 민감하고 걱정,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쉬운 성향으로 다양한 정신적인 증상의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즉, 신경증적 성향이 높은 사람이라도 외향성이 높다면, 신경증적 성향이 우울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외향성이 왜 우울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걸까?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사회활동이 활발하고 긍정적인 감정 경험이 많으므로 우울증의 보호인자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내향적인 사람보다 긍정적인 경험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만족감을 크게 느껴 우울감을 비롯한 부정적인 정서에 대한 완충재 역할을 한다.
실제 우울증의 중요한 치료 중 하나인 행동활성화는 정확히 이런 특성을 이용한다. 기분이 아니라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활동을 늘려나가도록 도움으로써, 행동을 먼저 시작하고 이후에 기분이 뒤따라 올라오도록 만드는 것이다. 외향적인 성격이 우울증의 보호인자가 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즉, 우울증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활동 수준과 긍정 경험을 높여나가는 게 중요하다.
우울증과는 반대로, 높은 외향성은 불안 장애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정확한 수치로는, 외향성이 높으면 불안 장애 위험이 29% 정도 커졌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신경증적 성향이 높은 사람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각성수준(baseline arousal)이라는 개념에 빗대어 설명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회활동에 적극적인 만큼 기본적인 각성수준이 높기 때문에 사회적 자극에 대한 과민반응, 불안 및 과도한 걱정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면모가 신경증적 성향과 결합하게 되면, 불안 장애에서 잘 나타나는 반추, 과민성 및 감정 조절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불안장애를 다루는 심리치료에 포함된 다양한 각성 요법도 이와 유사하다. 과도한 자기초점화를 줄이고, 이완 요법을 통해 각성 수준을 줄임으로써 일단 불안 장애의 악순환 회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장애를 다룰 때에는 각성 수준을 줄이고, 에너지 수준을 조금 더 낮출 수 있는 이완된 환경을 마련한 후, 다시 단계적으로 수준을 높여가며 자극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하다.
우울 또는 불안 장애에 따라서 발생 위험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달라졌던 외향성과는 달리, 강한 사회적 지지는 일관된 보호인자로 작용했다. 우울증과 불안 장애의 발병 위험을 1/2 이상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인관계에서 기인하는 안정성이 클수록 스트레스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줄어든다. 더 나아가, 대인관계에서 기인하는 정서적 지지와 공감은 감정 조절을 돕고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대처 전략을 향상하기 때문에 우울과 불안의 위험을 낮추고 전반적인 정신건강을 보호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물론 성격이 정신건강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며, MBTI 유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성격은 정신건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생활 속 어려움을 유발하는 성격적인 특성을 인지하고, 또 어떤 측면이 강점이 될 수 있는지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자세는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큰 자산이 된다.
Metts A, Zinbarg R, Hammen C, Mineka S, Craske MG. Extraversion and interpersonal support as risk, resource, and protective factors in the prediction of unipolar mood and anxiety disorders. J Abnorm Psychol. 2021;130(1):47-59. doi:10.1037/abn0000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