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대한 한 가지 흔한 오해가 있다. 우울증 환자를 생각할 때 종일 눈물을 흘리거나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물론 우울증은 거의 종일 지속되는 우울감과 의욕 및 흥미 저하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우울증은 매우 역동적인 질환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당장 우리의 기분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감정과 기분은 시간, 상황, 심지어는 날씨처럼 사소한 요인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동을 거듭하기도 한다.
2024년 2월, 임상심리학 학술지인 Journal of Psychopathology and Clinical Science에 우울증의 역동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연구가 게재되었다. 바로 ‘우울 증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Depressive Symptoms as a Heterogeneous and Constantly Evolving Dynamical System)’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진은 주요 우울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에서 일어나는 증상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미국에서 진행된 본 연구에는 총 105명의 성인 우울증 환자가 참여했다. 참가자는 90일간의 추적기간 동안, 하루 3회씩 우울 증상 여부와 심각도를 묻는 설문지인 우울증 건강설문-9(PHQ-9)을 작성했다. 더 나아가, 환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증상의 질적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증상 일기를 작성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주요 증상이 얼마나 자주 바뀌었는지 분석했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를 아래와 같은 히스토그램으로 나타냈다. 그래프의 x축은 개별 환자가 가장 중요하게 호소하는 증상이 바뀐 횟수이며, y축은 각 변화 횟수에 해당하는 참가자 수의 비율이다. 주요 증상이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참가자는 14%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86%는 90일 동안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증상이 최소 한 번 이상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가자는 평균 3회 증상 변화를 경험했으며, 일부 참가자는 최대 8회까지 주요 증상이 바뀌기도 했다.
연구진은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을 더욱 세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몇몇 참가자의 개별 사례를 인용했다. 그중 참가자 두 명의 사례를 함께 살펴보자.
위의 그래프는 시간에 따라 PHQ-9의 각 문항에 해당하는 증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x축은 7일 간격으로 시간을 나타낸 것이고, 각기 다른 색의 곡선은 PHQ-9에 명시된 우울 증상이며, y축은 각 증상의 상대적인 중증도 및 중요도에 해당한다. 참가자 1은 90일 동안 총 7회에 걸친 증상 변화를 보였다. 처음에는 “기운이 없다”라며 피로 및 기력 저하가 핵심 증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비판적 사고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동 증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초반에는 거의 없던 자살사고가 후반기에 들어 나타났는데, 오랫동안 지속된 피로와 자기비판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초기에 참가자 2의 가장 주된 증상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이었다. “아침에 일어난 뒤로 쭉 침대에 누워 있었다”라거나 “외출하기도 싫고, 이전에 좋아했던 곳도 가기 싫다”라며 흥미가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중반기에 들어 “기분이 다운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직접적인 우울감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뒤로 갈수록 자살사고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총 7번의 변화를 보인 참가자 1과는 달리 단 한 번의 증상 변화만 경험했지만, 강한 자살사고라는 심각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측면에서 우려된다고 할 수 있겠다.
연구 결과와 참가자의 개별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듯이, 우울 증상은 때때로 빠르고 예측할 수 없이 변한다. 본 연구의 가장 큰 교훈은 단순히 우울 ‘증상’을 치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증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나타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개별 증상을 치료하려고 애쓴다면 마치 ‘두더지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나의 증상이 좋아질 때쯤 없었던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우울 증상보다 우울증을 유발하고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요인, 그리고 생각과 행동 패턴에 집중해야 하겠다.
Nemesure MD, Collins AC, Price GD, et al. Depressive symptoms as a heterogeneous and constantly evolving dynamical system: Idiographic depressive symptom networks of rapid symptom changes among persons with major depressive disorder. J Psychopathol Clin Sci. 2024;133(2):155-166. doi:10.1037/abn00008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