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rumination)’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는 생각 패턴이다. 반추란 고통, 단점, 문제 등을 곱씹는 사고 과정을 말하는데, 반복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해결책을 모색해 나쁜 상황을 타개하려는 적극적인 사고와는 다르게, 반추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라든지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을까?” 등의 “왜” 질문을 반복하며 부정적인 감정에 스스로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울증의 맥락에서 반추의 중요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러 연구에 따르면, 반추는 불안 장애를 촉발하기도 하며 우울과 불안이 서로 강화하게 하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울과 불안의 공통점으로서 반추를 이해해보자.
자신의 단점과 아픈 기억에 대해 반추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은 우울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게다가 이미 우울 증상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반추는 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기간을 연장하는 데에 일조한다. 여기서 핵심은 반추가 실패, 두려움 등을 중심으로 하는 부정적인 사고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 패턴은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반추가 다양한 불안 장애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선행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반추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있었던 안 좋은 일이나 자신의 결점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의심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문제를 떠올리면서, 자신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의심한다. 이러한 사고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증상을 유발하고 심화시킨다.
반추는 우울 및 불안 증상 각각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지만, 우울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이 가장 높은 수준의 반추를 보인다. 반추는 우울과 불안, 두 문제가 서로 맞물려 소용돌이치게 촉매제와도 같다는 의미다. 즉, 반추가 정신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핵심 기전이며 우울 및 불안은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한 결과가 표출되는 다른 방식인 것이다.
반추라고 하면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곱씹는 과정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쉽지만, 반추는 시간이 흐르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 과거를 향하기도, 미래를 향하기도 한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을 곱씹으며 실패와 부족에 초점을 두는 반면, 불안한 사람은 주로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우울과 불안에서 나타나는 생각들은 시간의 흐름만 다를 뿐, 모두 반추를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반추 경향이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우울 증상을 겪고 있는 경우,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을 곱씹으며 무기력감에 빠지며 현재 상황을 벗어나려는 노력 자체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미래의 문제에 집중하나, 실제 그러한 상황이 도래하게 되면 오히려 과도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반추는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며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
임상 현장에서 보면, 순수하게 우울 또는 불안만을 경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 가지 문제가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수록 생각 속에 반추라는 범인이 숨어서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반추에서 기인하는 부정적 사고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우울과 불안의 불씨를 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Nolen-Hoeksema S. The role of rumination in depressive disorders and mixed anxiety/depressive symptoms. J Abnorm Psychol. 2000;109(3):504-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