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원인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우울증의 원인을 찾고 있나요?

“이게 대체 왜 발생한 거지?” 우울증을 처음 진단 받거나, 진단 받진 않더라도 명백히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인지한 사람들은 흔히 이와 같이 묻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우울증의 원인 찾기, 유전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까?

우울증의 발생에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우선 분명 유전적 소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자라온 환경, 사회 경제적인 요인(예: 소득 수준)도 우울증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는 그러한 상태에서 우울증을 유발하는 핵심적인 사건, 즉, 강력한 스트레스 사건이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우울증의 핵심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많이 노력했으나, 우울증 발생에 핵심적인 유전자, 혈액 내 물질, 또는 영상 이미지의 소견을 찾아내는 데에 실패했다.

2024년 JAMA psychiatry에 게재된 한 연구에서도 광범위한 머신러닝 최적화를 하였음에도 유의미한 바이오마커를 찾아낼 수 없었다고 발표했다. 개인의 기질, 환경적 조건, 스트레스 사건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저마다 다 다른 것이 분명하다.

우울증 원인 찾기, 혹시 반추 사고는 아닐까?

사실 가볍게 생각해 보아도 우울증의 단일 원인을 찾는 건 그럴듯하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우리가 단 하나의 요인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겠는가?

그러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걸까? 검색창에 ‘우울증’이라고 검색하면 이어지는 연관 검색어로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가 늘 따라붙는다. 왜 그런 걸까?

사실 우울의 원인을 찾아나서며 끊임없이 자아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울증의 주요한 증상 중 하나다. 우울증에 빠지게 되면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그때 그렇게 하지 않더라면…”와 같은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언뜻 보면 문제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생각 같지만 사실상 비생산적으로 반복되는 사고 패턴이다. 그러한 사고에는 결론이 없고, 문제 해결에 대한 힌트가 도출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끝도 없이 반복되며 자신만의 생각 속에 갇히게 만드는 생각 습관을 ‘반추’라고 부른다. 연구에 따르면 반추는 긍정적인 정서를 감소시키고 목표 성취를 방해하여 우울증을 지속시킨다. 그러니 인터넷에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라고 검색하기 전에, 나의 이러한 의문이 반추에서 기인한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우울증에 걸리는 걸까?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를 알고 싶었겠지만 아쉽게도 ‘내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를 명쾌하게 확정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가’ 왜 우울한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일반적인 설명이 가능하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 국내만 하더라도 20대 이상 성인 중 우울, 불안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약 1,100만 명에 달한다. 그 중에서 임상적으로 질환으로 규정될 정도의 문제를 가진 사람은 약 330만 명에 달한다. 미국인의 약 15-20% 정도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라는 종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흔하게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걸까?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보자. 짚신벌레는 우울을 느낄까? 아마 아닌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직감적으로 그럴 것 같다. 개미는 어떨까? 개미는 우울함이라는 걸 느낄까? 짚신벌레 경우보다는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아닌 것 같다. 개미가 우울감에 빠져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강아지는 어떨까? 어쩌면 강아지는 우울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통계적으로 보면 강아지조차 인간 세계에 나타나는 수준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우울증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강아지들이 감정을 느끼고 때론 우울해한다는 것만은 제법 사실처럼 느껴진다. 원숭이는 어떤가? 이쯤되면 이제 그들도 우울을 느끼고, 심지어는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짚신벌레, 개미, 강아지, 원숭이, 사람 순으로 생명체의 '자아'가 확실해질수록 우울을 느낄 확률이 높아짐을 나타내는 그래프
생명채의 '자아'가 확실해질수록, 우울을 느낄 확률이 높아보인다.

이를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생명체에게 자아가 존재한다고 확신할수록, 우리는 그 생명체가 우울을 느낀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다.

즉, 어떤 생명체가 스스로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믿을수록 그 생명체는 우울을 느낄 확률이 높아보인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인간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생명체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속에 떠올린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믿고 따른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니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아주 강력한 상징적 효과를 지닌다. 레몬을 씹어먹는 장면을 상상하면 곧바로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지금 이 순간에 실존하는 불안으로, 과거에 대한 후회는 지금 이 순간에 실존하는 우울로 실재하게 된다.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

약물 없이도 항우울제에 범접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인지치료는 대부분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생각과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을 절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며 괴로워하지 않고, 생각을 그저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연습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생각은 정확한지, 합리적인지, 도움이 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인지 구조를 발견하고 이해함으로써 ‘내가’ 우울한 이유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다,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도움을 구하는 방법들을 탐색하고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좋다. 오히려 치료의 과정에서 진정으로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 테니까.

당신은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가 궁금해 이 글을 읽기 시작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이 글은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더 헤엄치도록 만드는 정보보다 위와 같은 접근이 당신을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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