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긍정과 부정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울감, 슬픔, 절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과도한 반면, 긍정적인 감정은 결여되어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면, “우울하다”라는 말보다 “즐거운 게 하나도 없다,” “재밌는 걸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라는 식의 답변이 더 자주 들린다. 이처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anhedonia)’은 우울증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신질환에서 동반되는 현상으로, 일상생활에 다양한 어려움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쾌감증은 즐거움이나 흥미를 느끼는 능력이 저하된 상태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기쁨을 가져다주는 활동에서도 별다른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쾌감증은 크게 두 가지의 주요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예기 무쾌감증(anticipatory anhedonia)’으로, 즐거운 일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거나 목표에 대한 동기부여를 느끼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 해당한다. 반면 ‘성취 무쾌감증(consummatory anhedonia)’은 사회활동이나 맛있는 음식 먹기 등 실제로 즐거운 활동에 임하는 당시에 기쁨을 느끼기 어려워하는 상태이다.
이처럼 즐거움을 기대하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무쾌감증은 우울증 환자의 70%가 경험할 정도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별에 따라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대인관계에서 기인하는 즐거움이 결여된 ‘사회적 무쾌감증(social anhedonia)’은 남성에서 더욱 흔하다고 알려져 있다.
무쾌감증의 핵심은 쾌락, 즐거움 및 동기부여를 관장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다. 선조체(striatum)라는 부위에서 도파민 시스템의 기능이 저하된 경우, 미래의 보상을 예측할 때 도파민 반응이 감소하여 예기 무쾌감증을 유발한다. 또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도파민 기능이 저하되면 즐거운 경험에서 긍정적인 자극을 느끼지 못하는 성취 무쾌감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무쾌감증은 신경 염증(neuroinflammation)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염증 지표로 널리 활용되는 ‘C-반응성 단백질(CRP)’의 혈중 농도가 높을수록 무쾌감증이 심한 경향이 관찰되기도 했다.
우울증에서 일차 치료제로 선택하는 SSRI, SNRI 계열의 항우울제는 일반적으로 무쾌감증에 대한 효과가 제한적이며, 일부 약제는 감정이 무뎌지는 부작용을 유발해 오히려 무쾌감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 무쾌감증에 비교적 효과가 좋다고 알려진 약제로는 아고멜라틴(agomelatine), 보티옥세틴(vortioxetine), 그리고 부프로피온(bupropion)이 있다.
심리치료 부문에서는 인지행동치료(CBT) 및 행동 활성화(BA) 요법이 무쾌감증 개선에 대한 근거가 축적되어 있는데, 무쾌감증이 있는 사람은 즐거움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활동 자체가 저하되어 있다는 점을 치료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처음에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보상 회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활동 수준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진다.
무쾌감증은 말 그대로 즐거움 스위치가 꺼진 상태이다. 그런데 무쾌감증의 치료는 불빛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만약 즐거운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작은 행복부터 하나씩 찾는 연습을 하자.
Serretti A. Anhedonia and Depressive Disorders. Clin Psychopharmacol Neurosci. 2023;21(3):401-409. doi:10.9758/cpn.23.10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