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전문가들이 환자를 면담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이야기 중 하나가 기분에 대한 질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우울해요’, ‘불안해요’, ‘마음이 힘들어요’라는 대답만큼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제 기분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다. 이처럼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서는 기분이 무엇인지 캐치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현상을 정식 용어로 ‘감정표현불능증(alexithymia)’이라고 부른다. 이번 글에서는 정신건강에서 감정표현불능증이 가지는 의미를 다룬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정신의학 저널인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에 실린 ‘감정표현불능증과 우울, 불안 및 스트레스(Alexithymia profiles and depression, anxiety, and stress)’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본격적으로 연구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감정표현불능증이라는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짚고 넘어가자. 연구진에 따르면, 감정표현불능증은 아래와 같이 3가지의 세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1. 감정 인식의 어려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고 구별하는 데에 겪는 어려움을 말한다. 슬픔, 우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고, 반대로 기쁨이나 희망과 같은 감정적인 감정을 알아채는 것이 힘들 수도 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2. 감정 표현의 어려움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인식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하더라도 이를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설명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동반될 수 있다.
3. 외부 지향적 사고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건을 경험했을 때, 그 사건과 관련된 내면의 감정 경험보다는 외부의 표면적, 사실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인사이동이 생겼을 때 사실에만 집중할 뿐 그 사건이 내 마음에 일으키는 감정 변화는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다.
연구진은 총 1,250명의 호주 대학생을 대상으로 감정표현불능증 및 우울, 불안 등의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감정표현불능증은 우울, 불안 및 스트레스 증상과 유의미한 비례 관계를 보였다. 이때 감정표현불능증은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서 정신건강 어려움의 심각도를 일부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정 인식의 어려움’ 및 ‘감정 표현의 어려움’이 강력한 예측 인자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 또는 긍정적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 사람일수록 심각한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전반적으로 정신과적 증상이 심각한 사람에서 ‘외부 지향적 사고’가 높은 비율로 관찰되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감정 결핍이 광범위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살펴봤듯이, 감정표현불능증 그 자체만으로 질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잘 다뤄주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 인식을 어려워하거나 방어 기제의 어떠냐는 감정 회피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특히 회피를 줄이고 자신의 감정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디스턴싱에서는 <생각기록지>를 활용한 ‘분리하기(segmentation)’, 그리고 <명상활동지>를 활용한 ‘알아차림(awareness)’ 등을 연습하며, 내면을 마주하는 연습을 진행한다.
당신의 오늘 기분은 어떠한가? 단순한 질문인 것 같아도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건 마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Preece DA, Mehta A, Petrova K, Sikka P, Pemberton E, Gross JJ. Alexithymia profiles and depression, anxiety, and stress. J Affect Disord. 2024;357:116-125. doi:10.1016/j.jad.2024.02.0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