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거리두기

우울증은 왜 이렇게 보편적인 질환이 되었을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걸까? 또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늦게 치료를 받거나, 혹은 아예 치료를 받지 않는 걸까? 실제 우울증 치료율은 선진국조차 5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7%다. 즉, 우울증을 앓는 100명 중 27명만 전문적인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보편적이면서도 끈질긴 질환이 된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마음 문제는 자신의 자아와 결코 떼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감기를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감기를 바이러스에 의한 질환으로 인지한다. 폐가 안 좋다거나 기관지가 안 좋다는 건 쉽게 받아들인다. 암도 마찬기지다. 위암이 있다는 건 위가 아프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신건강에 있어서는 그 경계가 매우 흐려진다. 우울하다는 건 나의 정신이 아프다는 걸까? 그렇다면 나의 자아가 문제인 걸까? 내가 이상한 건가?

이처럼 우울증은 본질적으로 자아동일적(ego-syntonic)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의 질환 또는 증상으로서 다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치료해야 할 초점도 불명확하다. 어디까지가 질환이고 어디까지가 ‘그냥 내가 이상해서’ 생긴 문제인지도헷갈린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우울증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우울감이나 무기력 등을 하나의 현상으로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우울증을 그저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증상, 즉, 하나의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감기에 걸린 환자가 기침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 이제 한 걸음 떨어져서 우울증을 바라보자. 이 우울증은 나 자신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많은 연구들은 우울증이 아주 강력한 색안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즉, 우울증을 앓게 되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우울증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아래 도표를 살펴보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편향되고 불균형적인 인지를 가지게 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깊은 내면에는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자, 이제 이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언젠가 그는 하루종일 유튜브만 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참고로 이 글을 작성한 의사인 필자조차도 유튜브에 매달리며 산다)*. 그리곤 생각한다.

“나는 진짜 엉망진창이야. 무능하고 쓸모없지.”

하지만 삶의 모든 측면이 엉망으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또 어느 하루는 과제를 잘 마무리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우울증이라는 색안경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상황에서, 그 생각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도달하지 못한다. 무기력하게 튕겨나갈 뿐이다. 더 재밌는 현상도 있다. 언젠가는 교재 읽기를 잘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역시나 마음에 도달하지 못한다. 재밌는 점은 우울증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무능하다’는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를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보자… 교재 읽기를 잘 마쳤어? 음… 그래, 이거다! 하지만 너무 오래 걸렸는 걸?”

유레카. 우울증은 순식간에 정보를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정보를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결국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커져만 갈 뿐이다.

인지치료의 창시자 Aaron T. Beck은 이를 두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나, 타인, 세상에 대해 편향되고 불균형적인 인지를 가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지치료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한 후, 단계적인 작업을 통해 그로부터 거리두는(self-distancing)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다음 두 가지는 지금 당장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첫째, 우울증은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의 심리적 사건일 뿐이다(마치 감기에서의 기침 현상과 같이).

둘째, 우울하고 기력이 없을 때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 발짝만 떨어져서 관찰해 보자.

이는 디스턴싱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과학자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는 일. 그러한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체계적이고 공격적인 방법으로 우울증을 무너트리는 일은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