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바라보는 첫 번째 관점, 생각

우울증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은 단연코 ‘생각’이다. 그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고통받으려는 요구

우울증을 심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가장 첫 접근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일 것이다. 정신분석은 우울증 환자들의 무의식을 탐구했고, 특히 우울증 환자들이 자기에게로 향하는 적개심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적개심은 고통받으려는 요구로 표현된다고 주장했다. 우울증 환자들이 스스로 원해서 고통받는다는 말은 지금에서는 다소 이상하게 들리지만 당시 이러한 생각은 제법 큰 인기를 얻었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왜곡시키는 우울증

Aaron T. Beck 박사도 처음에는 그러한 정신분석을 믿었다. 그래서 정신분석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추가 연구를 하던 중, 그는 지속적으로 다른 증거를 발견한다. 우울증 환자들이 오히려 타인의 수용과 인정을 이끌어내는 반응을 더 선호하고, 거부나 비난을 야기시키는 행동을 더 회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을 기반으로 우울증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본 Beck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우울한 상태에 있을 때 환자의 개인적 패러다임은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왜곡시킨다. 그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신념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당치 않은 것이며 우울하지 않을 때는 자신의 눈에도 당치 않지만 지금 그 자신이 보기에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인식된다.

그는 우울증 환자가 자신, 외부세계, 그리고 미래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광범위하게 부정적인 인지왜곡이 그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경험적인 증거를 찾고 논리에 기반해 생각을 재검토하며 왜곡된 인지를 교정하는 기법을 개발했고, 우울증 환자들의 왜곡된 정보처리를 보다 현실적으로 돌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우울증 환자들은 약물 없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Beck의 ‘인지치료’는 우울증의 비약물치료를 본격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

하지만 이후 Beck의 가정에 반박이 제기되었다. 우울증이 ‘왜곡된 인지’를 바꿈으로서 치료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내용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생각 자체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마음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들을 받아들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게 인지치료의 근본적인 치료 원리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후 본격적으로 탐구되며 마음챙김기반인지치료, 수용전념치료 등 다양한 치료법을 만들어냈다.

정확히 어떤 기전이 옳은지와 별개로 인지치료를 단순히 ‘잘못된 생각 바꾸기’가 아닌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인지치료를 진행하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선생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요.” 아마 디스턴싱을 어느 정도 이용한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이야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올바르게 생각하자는 게 인지치료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지치료가 정말로 효과 있으려면 생각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를 지니기 위해서는 인지치료를 ‘왜곡된 생각 바꾸기 연습’이 아니라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로 바라보는 것이 도움될 것이다.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가 잘 되지 않을 때면 다음 비유들을 떠올려보자.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 : 생각의 강

나의 마음속에는 강이 흐른다. 강 위로는 나뭇잎이 떠내려온다. 나뭇잎 위에는 생각이 쓰여져있다. 생각은 그저 아래로 흘러갈 뿐이다. 나는 강의 ‘밖’에서 가만히 앉아 나뭇잎을 지켜본다. 나는 종종 정신 없이 나뭇잎을 따라갈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자리는 나뭇잎 위가 아니라 강 밖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당신은 생각 그 자체가 아니다. 생각은 그저 마음속에 떠오른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 : 컨테이너벨트

나의 마음속에는 컨테이너벨트가 있다. 컨테이너벨트 위로는 다양한 박스가 이동하고 있다. 박스 안에는 당신의 생각이 담겨있다. 역시나 당신의 자리는 컨테이너 위가 아니다. 컨테이너 위에 올라타면 더 어지럽고 박스에 갇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나의 자리가 컨테이너 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면, 당신은 개별 생각들이 주는 영향으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각과 다시 관계 맺기 : 마음 속 하늘

당신의 마음 속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에는 구름이 떠다닌다. 구름은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 모양을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제 스스로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바람이 불거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없어지기도 한다. 생각도 구름과 같은 것이다. 구름을 억지로 바꿀 수도 없듯, 생각을 억지로 바꿀 수도 없다. 사실 그것이 정말 정확히 실재하는지도 불분명하다(당신은 구름을 붙잡아둘 수 있는가?) 당신은 하늘 그 자체일 뿐, 개별 구름이 아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비바람이 쳐도, 먹구름이 몰려와도 그 위로는 항상 맑고 청명한 하늘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보다 더 큰 존재다.

인지치료에서 ‘생각 함정’을 찾아 체계적으로 다루는 작업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진행할 때 ‘잘못된 생각’ vs. ‘올바른 생각’ 구도에 빠지진 말자. 당신은 마음속에 떠오른 나뭇잎, 박스, 구름을 잠깐 들춰보았을 뿐이다. 그것은 올바를 수도,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다.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그럴 가능성이 높다), 정확하더라도 도움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당신은 그 모든 생각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먹구름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겠지만, 먹구름이 되기로 하는 건 나의 선택이다. 생각 함정을 다룰 때에는, 그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이 원리를 잘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