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턴싱은 ‘생각’ 관점에서 우울증을 접근한다. 그런데 우울증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각’뿐일까? 그렇지는 않다.
우울증을 행동의 문제를 보는 시각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우울증은 행동이 결핍되어서 발생한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정서를 고양시켜줄 행동들이 결핍되며 점차 무기력에 빠지고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행동을 활발하게 하여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도 생겨났다. ‘행동활성화’라는 치료법이다. 행동활성화는 그 자체로 우울증에 제법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의 경우에는 자꾸 무기력해지고, 그렇다 보니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게 되고, 그렇다 보니 삶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할 기회가 자꾸 줄어들고, 그 결과 무기력이 심해진다. 행동활성화는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체계적인 방법으로 행동 수준을 높인다.
우울증을 행동 측면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단순히 ‘몸을 움직여서 에너지 레벨을 높이자’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우울한 사람들은 왜 자꾸 무기력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걸까? 행동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행동은 그냥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한 결과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즉,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이 나에게 긍정적인 무언가를 제공해주는 것일 때면 그 행동은 ‘강화’되고 보다 빈번하게 나타난다. 유사하게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이 나에게 부정적인 무언가를 제거해주는 것일 때면 그 행동은 ‘강화’되고 보다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무기력에 빠지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심하고 무능하다”라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행동 수준을 줄이게 되면 적어도 다양한 일상 속에서 자신이 실수하고 거절되는 경험을 마주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무기력은 수치심과 괴로움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에 ‘강화’되는 것이다. 비슷하게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기력함을 보일수록 치료자가 그들에게 더 걱정어린 관심을 보낸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게 된다. 즉, 무기력은 그들이 원했던 관심을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에 ‘강화’되는 것이다.
이 측면에서 우울증을 생각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행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통합될 수 있다. 생각 또한 결국 하나의 행동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속에 어떤 생각들이 팝콘처럼 무작위적으로 떠오르는 이유는 긍정적인 것을 제공해주든, 부정적인 것을 제거해주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라보면 비로소 자신이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가 동반되면 변화가 생겨난다.
결국 생각에 집중하든, 행동에 집중하든, 핵심은 동일하다. 자신의 내면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잘 이해한 뒤, 그것이 철저하게 나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란 점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본 후,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거리두기 연습은 현대 심리학과 인지치료 이론의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